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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9. 2. 8. 21:49

이토 준지 <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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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 이토 준지씨의 <인간실격> 에 대해서 말씀 해 주신다면? A : 글쎄요... 일단 이토씨의 작품은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습니다만, 다자이 오사무씨의 <인간실격>은 제가 아는 한, 거의 모든 판본을 보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영원의 형식 아래에서 쓰여진 문학이니깐요. 이토씨의 <인간실격>에 대해서는 일단 아쉬움... 실은 좀 더 격하고 부정적인 감정입니다만(웃음), 네. 일단은 아쉬움이라고 해 두죠. 가볍게 들어가자면, 요조씨의 몰락과 방탕의 원인은 일본의 해체와 근대성의 성립에 좀 더 근원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또 저의 이해이기도 합니다. 감정적 괴벽, 투명하게 드리워지는 여성의 호의는 요조라는 존재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 있어서 이토씨의 요조에 대한 해석은 외려 작품의 결과를 원인으로 도치한, 무엇인가 잘못된 공격이 아닌가 해서 의아했습니다. Q : 그 의아함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 A : 예를들어 요조는 인간 보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그 개인이 흉기를 휘두를때, 요조는 그 흉기의 끝에서 피를 흘리는 인간 전체를 봅니다. 그것이 원작이 지닌 영원성 가운데 하나죠. 그렇다면 요조를 탄생시킨 두려움, 그것은 여성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토씨의 해석에서는 남성은 범접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두려움의 층위라면, 여성은 덧없고 제압가능하고 심지어는 알 필요없는 사소한 대상으로서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몰이해의 층위는 자아에서 증폭되고 확장되죠. 그러니까 다자이씨의 요조는 뻔뻔하지 않지만, 이토씨의 요조는 사건이 있을 때 무분별하게 뻔뻔하다는 겁니다. 공포에 짓눌려서 남들이 보기엔 뻔뻔한 행동을 하는 나약한 인간과, 스스로의 뻔뻔함을 공포로 짓눌렸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항변하는 인간의 차이는 드러냈어야죠. 결국 '나'라는 것을 몰라 나는 나일수도 인간일수도 없구나... 이게 요조의 감정인데, 이토씨의 요조는 꽤나 스스로에게 투명합니다. 시각과 텍스트라는 장르적 차이에 기인할지도 모르지만, 여튼 이토씨가 분투해야 할 지점이 빗나갔구나 싶어 아쉬웠습니다. 오사무씨는 생전에 여성의 묘사에 대해 굉장히 천착했을 뿐만 아니라,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여성의 모습을 한, 다리에 시커먼 털이 숭숭 난 남성'이라 힐난하기도 했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이면서도 내밀한 어찌보면 사소설의 정수에 서 있는 <인간실격>에 있어서 여성이란 작가의 한계를 반영하며 회전하는데, 이토씨의 해석은 가볍다고나 할까... 풍류와 극적 장치를 위해 무분별하게 쓰였다고나 할까... 그렇습니다. 물론 이토씨가 여성을 오사무씨처럼 파고들어야 한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시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고 퇴행적인 면은 있었다고 언급 해 두겠습니다. Q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A : 이토씨의 이전 작품처럼 수많은 선들과 어둠으로 눈이 아닌 뇌를 자극하며 넘어가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미성년의 요조를 하녀가 겁탈하는 장면등을 과감한 어둠속에서 배치했으면 하는. 그 뒤에 이어지는 우스운... 성적 어트랙션과 살인 또한 마찬가지죠. 웃기지도 않고 뭐랄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냉담속에서 낙담하게 한다 할까. 이 장면들이 만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독자를 다음 페이지로 이끌지 모르겠지만, 요조가 지니게 된 어둠과 절망에 대해서 그 깊이감을 상실시킵니다. 이게 원작과 가장 불편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요조는 어둠과 성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조라는 사건에 어둠과 성의 난해함이 들러붙어 있는 것이죠. - 2019. 01. 쇼쿠호메이칸誌, 고바야시 다이치로, 작가 그리고 작가, 부분 발췌 및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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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9. 1. 8. 23:48

냉장실에 잘 익혀둔 콜라 한 캔을 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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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리고 2018년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해였습니다. 2017년 연말, 주변 사람들과 "올해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내년에는 좀 나아졌으면"하고 말을 나눈 기억이 있는데, 2018년은 2017년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발작적인 웃음과 몇 번의 광기는 모두 저 두 해의 불운과 비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살덩이의 움직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패시브였죠. 그리고 이어지는 발버둥. 돈을 벌어야지. 그래 돈을 벌자. 아, 담배도 끊자. 그래 살도 좀 빼자.


그래서 돈을 벌었고, 담배를 끊었고, 살도 뺐습니다. 정말 괴로운건 그 모든걸 제가 원해서 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처음 만나는 두려움에 대한 반사작용이었습니다. 공포는 아직도 제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019, 올해도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겹쳐 평일 24시간 내내 정확하게 저 혼자만 있게 되었습니다. 기약없이 계속 홀로 있다는 것은 실제로 몸과 정신에 고통을 야기합니다. 대출이나 연체로 인해 추심당해보신 적 있나요? 그것과 거의 느낌이 비슷합니다. 고독감에 의해 다른 사고기능이 마비됩니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 전화라도 걸어오면 전 재산을 다 줄만큼 취약해집니다. 카톡 한번 울리면 몸이 끔쩍끔쩍 놀랍니다. 모르는 번호가 뜨면 뇌에서 폭죽이 터집니다. 이런 연결이 저의 하루를 구원한게 벌써 몇 번입니다.


외로운 감각에 몸과 정신이 피폐하게 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진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의 절대적 접촉면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그 줄어든 접촉면을 유지하는 기술에 대한 문제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불안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스웨덴의 누드 자전거 대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회에 참여한 인간들은 울퉁불퉁했습니다. '아 진짜 사람이네'하는 감탄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상실한 감각이 그런 것 같습니다. 울퉁불퉁한 사람이 보고싶습니다. 몸도, 마음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인간이라는 것이. 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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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10. 7. 00:11

Order No: 1825554 - Sat, 06.10.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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