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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7. 9. 11. 01:43

새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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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지옥.


천국의 이야기에 관심있다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나 역시도 천국에서 이 세계로 유출되는 소문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아니, 좀 이렇게 문장을 내리다보니 좀 진지해진다. 천국에 관심을 가지는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새지옥에 들어왔다. 여기는 신호등 알사탕과 흰 쌀밥위에 얹은 김치참치볶음으로 겨우 달래오던 내 악마가 새로이 만든 지하실이다. 새지옥. 뉴... 헬... 뭐, 그런거다. 지옥은 얼마나 참신해야 하는가. 또한 지옥은 얼마나 격렬해야 하는가. 적어도 언어와 관련된 모든 지성은 지옥에 매진했다. 


새지옥의 양상은 이러했다. 나는 2017년 9월, 난생 처음으로 장기간의 현기증을 앓게 되었다. 정확히 9월 1일 새벽 2시에 누워서 최첨단 아이폰6 32기가 스페이스 그레이로 클래시 오브 클랜을 하는데, 갑자기 핑~ 하면서 어지러웠다. 40년 하던 세탁소 때려친 부모님은 제주도로 망명가버리고, 혼자 집에서 까붕이랑 덱데굴 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몸에 이상신호가 오니 일단 겁이 났지만, 잤다.


자고 일어난 9월 1일 오후, 망원동으로 나가는데 계속 어지러워 약국에 들어갔다. 약사는 나보고 저리 가라 한다. 혈색좋은 중년이 내 팔뚝을 칭칭감아 어쩌구 한다. 혈압은 정상인데 어쩌구 그래서 6개월치 약이 6만원... 비싼데... 그럼 3개월치 절반해서 3만원... 좀 그런데... 그럼 이 비타민제제 5천원... 그래서 비타민과 어쩌구 뭐 영지천 그런 한약비슷한 그런거랑 알약하나 먹었는데 효과는 개뿔 씨발 내 오천원.


여튼 망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갔지만 계속 어지러웠다. 두통은 고3때 앓아본 이후 단 한번도 앓지 않았고, 2014년에 터진 맹장염(이것은 전 인구의 3%가 겪는 인류의 원쑤!!!)을 제외하고 딱히 병원신세를 져 본적도 없는데, 고개를 들면 계속 핑글핑글 돌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난간을 티내지 않고 근엄한 척 찾는 내 모습에 북핵위기보다 더 해법이 절실했다. 아 씨발 김정은 개새꺄.


여튼 그렇게 매일매일 현기증이 1주일 가량 되었다. 현기쯩 터지기 직전에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뭐 터진다음에도 계속 꾸었고. 심지어 악몽을 꾸지 않은 날도 악몽처럼 기억이 생생했고, 왠지 악몽을 꾸지 않아 섭섭하기까지 할 정도로 매일 악몽을 꾸었다. 근데 아무도 믿지 않음. ㅇㅇ... 왜냐하면 살이 안빠졌으니까. 살은 모든 것을 증거한다. 씨발 메를로 뽕띠 개새꺄, 그럼 노인의 살은 늙은 정신이고 뭐 애기살은 그럼 뭐 앳된 정신이여? 좌우간 프랑스 놈들 너무 얄미움. 여튼,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래저래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 십수년 간 술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술을 퍼마셨고, 엄한 말 한다 해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한다는 이유로 별의별 인간의 잔혹함과 밑바닥 이야기를 퍼들었던 내가, 드디어 당신들에게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 지점에 있어서 다자이 오사무는 옳지.)


이 상태로 다시 2017년 9월 8일 9일 10일을 부산 - 대구 - 대전을 전전했는데, 할 일은 막 테트리스처럼 쏟아지고, 짐은 어께를 짓누르고, 현기쯩 티 안낼려고 에헷에헷 거려야 하고 돌겠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10일 오전 10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공원 앞에서였다. 그때, 난 국채보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저따위가 무슨 기념인가... 로 일단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의미를 부여하고 으쌰으쌰 한 것을 기억하는게 뭐 어때서,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국 박물관 앞 트라팔가 광장에서 빅 벤으로 걷다보면 별의별 전쟁참전 장군, 아재, 아지매, 어쩌구가 나온다. 거기에 있던 여성들을 기념하는 조각상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좋았었다. 사실 그날 특별하게도 런던에 비가 내렸다. 똥양인인 나는 부르주아들이 드나들법한, 나무로 장식된, 두꺼운 글라스가 있던 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마 빅 벤 건너편이지 싶었는데, 영국은 물가가 비싸서 그런데 함부로 들어갔다가 속옷까지 몽땅 탈탈 털리고 국제미아 되었다가 신장은 멕시코에, 불알 한쪽은 아이슬란드에 이주장기 비자 받고 수출된다.


그렇게 나는 새지옥에서 벗어났다. 현기증. 고개를 들면 어지러운 세계. 다행이도 빙글빙글 돌지 않았다. 물론 나미를 기억할때 사람들은 빙글빙글을 주로 기억하지만, 신승훈이 리메이크 한 '님의 계절'이라는 명곡이 있다. 님, 나는 님을 생각한다. 별들의 주기와 인간의 주기는 딱히 관계가 없어보이고, 변덕이 문제다. 변덕. 목마른 사슴은 연못을 찾지만, 갑자기 입술에 물이 닿으면 삼투압 작용으로 인해 오줌이 나온다. 똥오줌 속에서 사슴은 번민한다.


어릴적 김성동의 <만다라>라는 불교소설을 읽다가 해탈의 꿈을 얼핏 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드니 그런거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해봤자 내일 또 똥싸야 하고, 누으면 등허리 막 배이고, 개그 보면 웃고, 나뿐놈들 보면 막 화나고 그런거다. 내 인생의 첫 깨달음은 고딩때 4분단 두번째 줄에 앉아 쳐 자는데 해가 막 씨발 존나 뜨겁고 따갑고 미치겠는게라. 근데 내가 화내봤자 해가 사라짐? ㅋㅋㅋㅋㅋ 그럴리 없음 ㅇㅇ... 그래서 그때 아, 씨발 내가 저 해 가지고 뭐라 할게 없다. 그냥 가만히 쳐 자자... 했는데 존나 마음의 평화가 야동 800기가가 스쳐간 하드디스크처럼 찾아왔다. 그리고 또 몇개 깨달은게 있는데, 그러니까 시나 음악이나 인간이나 한번 내 안에 들어와서 요동치고 지랄이면 그게 다시 쑥 하고 어느날 나가야 좀 말도 걸어보고 사랑했노라 평가도 할 수 있는데, 그거 강제로 안되는거라서 그냥 헤헤 거리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거. 그리고 또 뭐가 있었는데 여튼 다 까먹었다. 근데, 까먹으면 내 안에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욕망을 투사하는 저 아사리판에서 난 좀 벗어나고 싶다. 이제 뭐 불끈대는 것도 없다. 느그들 쒞꺔마, 고귀하고 아름다운거 아는데, 내가 느그 남천서 스장이랑 마 닥치고 죽는건 소박하고 비장하다. 시간이 남으면 국립중앙도서관 어쩌구에 쳐박해서 배우론 쓰고싶다. 배우 필모그라피 모조리 뒤지고 내 뚝빼기 막 깨부숴숴 꾸쑝의 최민식부터 돼지 우물 웅앵에서 불싸파 송강호에 대해서, 그리고 막 염전에서 게이쎾쓰퍽퍽헉헉 하던 황정민에 대해서. 근데 진짜 이휘향 배우님은 어린 내눈에도 너무 야하고 멋졌다. 꾸쑝??? 예, 누님. 


야망의 세월~~~ 부산 너무 좋다. 부산에서 죽기전에... 는 아니고 몸이 좀 싱싱할 때 3년 정도 뜨겁게 몰래 사랑하며 살고싶다. 범죄와 마약의 도시에서 핏물을 머금고 틔운 우리 사랑의 꽃이여. 부산 최고.


근데 대구에 김광석 거리가 있길래, 아니 김광석은 그래도 대학로 아닌가, 대구 뭐 출생지 말고 뭐 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김광석 노래 전부 CD에 청승에센스 쳐발쳐발 한거 아닌가 하고 씨부렸는데, 내가 들고간 MP3 양키놈 조선놈 할거 없이 트랙 전부 청승맞더라. 그리고 니들 머라이어 캐리좀 들어라. 똥음악 듣다가 머라이어 캐리 들으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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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7. 5. 28. 04:20

박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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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인 관계들로 인해 내 안의 말들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질까 싶다가도 다시 곪아온다. 게임을 지웠다. 그리고 또 게임을 지웠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가치있는 무엇으로 빼곡하게 보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숨막힌다. 그것은 어떤 routine을 의미한다. routine을 '굴레'로 써 보려 했는데, 식상하고 부정적이다.


routine에 익숙해지고 그것에 의해 안정감을 찾는다 착각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스트레스의 능률적 처리를 의미한다. 일어나서 턴 테이블 위에 LP를 걸고 커피를 내리는 중산층의 아침같은 판타지를 노래할 바보가 어디있겠나. 나이가 들어가며 그 routine에 경중을 매기고 넘어가도 좋을 것들과 넘어가면 안 될 것들만 구분해도 치매는 이역만리 판타지라 되겠지.


여튼 타자의 혹은 집단의 sub가 되어 이러한 구성성분이 잘 작동하게끔 하는 일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강해져서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되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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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7. 26. 05:46

1999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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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었는지 술에 취해서 터벅터벅 총학생회실로 올라갔다. 아마 109주년 노동절 전야제 준비때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대동제일수도 있고 - 기억이란 뭐. 여튼 술에 취해 갑갑함을 느끼며 총학생회실에 올라가니 부총학생 회장이 있었다. 여성이었다. 헐거운 쇼파에 마주 앉아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저는 몇학번 무슨꽈 누구입니다"로 시작한 나는 이거저거 물어봤었다. 당시 총학 정책이 등록금과 노동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입장이 어떤지, 녹색-환경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물어봤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딱히 기억은 안난다. 원론적인 이야기 - 노동이 풀리면 그런 문제들 역시 중요해지리라는 그런 것들이었고, 새벽시간이라 지쳐있었고, 나는 술에 취해있었다.


부총으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 말을 듣지 못했다. 실은 내가 다닌 학교의 선배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희대 - 이대쪽의 선배들을 거쳐서 총여학생회와 안면이 있었고, 그 부총학생회장이 총여쪽과 모종의 갈등상태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총여학생회가 NL계열(대체 이게 무슨...)과 좀 더 근친적이기도 했었고. 여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총과 노동, 여성,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술에 취해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그게 다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어떤 낙관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생각. 그래서 LGBT문제나 여성 문제가 사회의 주요한 이슈들로 확장되고 그것에 대응하며 나-세계의 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 이 추상적 낙관을 당시에는 명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건데 분명 그것은 낙관이었다.


지금은 그 낙관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나 또한 그 낙관의 연장선을 직접적으로 부여잡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쓸쓸하고 무력하다. 여튼, 나는 그 낙관에 대해서 어느정도 낭만적 회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 제2차 가해나 여성에 대한 무례함을 "운나쁘다"가 아니라, "저것이 옳은 이야기이니 말과 행동을 삼가하자"가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크게 확장되리라는 낙관이 있던 세계.


나는 그 세계의 수혜를 입었었고, 내가 방기하는 동안 그 낙관은 자연스레 퍼지리라 기대했었다. "기대했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정말로 기대했었던 것 같다. 바스라진 그 낙관들을 보며 운동에 있어서 a priori의 문제들이 해소되기를 바란 나의 유치함에 대해 쓴웃음이 나온다.


이 다음, 현재의 여러가지에 대해 한참을 쓰다가 그냥 지워버렸다. 지우면서 나는 절망을, 또 낙관을 생각했다. 이것을 구체적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나누기에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다.



scene 1. 저 봄에, 총여학생회와 세미나를 같이 하며 부총여학생회장에게 "그럼 이건희의 아내도 여성 이슈가 있는가?"를 물었더니, 그녀는 '같은 여성이기에 자본가라도 연대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관계보다 앞선다. 그녀 역시 여성으로서 고통받고 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이다'라는 요지의 대답을 했다. 당시 나는 참신한 개소리라 생각하며 총여실을 나왔다. 젠더 개념이 수입되어 여물지 못한 시절의 촌극이다.


scene 2. 2004년 처음으로 학내의 게이 커뮤니티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것을 지지하던 우리의 대자보는 어용 총학생회에 의해 훼손 및 강제철거 당했다. 총학생회실을 발로 까고 들어가 썅욕해가며 멱살잡이 하던 기억이 난다. 총학생회가 어용이라는 것 - 특정 자본의 배경 아래 (자발적으로) 놓여 있다는 점들이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태도를 지니게 하는것은 아닌가 하고 한탄했었다.


scene 3. 아마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치적이며 직접적인 공격과 숙청 등 여러 정치의 도구들을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시기 또한 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까지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몇몇 지점에서 오류이고 잘못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런 지점들이 페미니즘의 논의가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정상 정치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지점을 비판-비난 하는 것이 상식과 직관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권력, 가해자, 피해자, 생산에 대해 뿌꼬를 읽어대던 모두가 그게 무슨 말이었던가 하며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은 꽤나 한참 후였다.




이래서, 예전 이야기는 말하기도 쓰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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