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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9. 8. 23. 07:24

2018. 08. 20.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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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정책, 오염배출이 심한 공장을 폐쇄하고 먹거리에 장난을 치는 이들을 일벌백계 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 인간은 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 13억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CCTV를 중심으로 한 사회안전체계 등의 강력한 통제정책에 대해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중국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들을 서구사회 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번 홍콩 시위는 탈세를 하며 영국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들은 중국 본토인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불법적 시위, 영국인이 되고자하는 집단행동, 같은 중국인에 대한 폭력행위, 중국 국기 훼손 및 중국 인민에 대한 멸칭 등 중국 국가 모독에 대해 중국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정당하다.

 

- 범죄 예방 및 처벌에 있어서 사형제에 대해 찬성한다.

 

- 남한의 예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맞지 않다. 13억이다.

 

- 나는 나 자신을 중국인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나 일본 센다이 지역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맞았을 때, 미국 대사관은 영주권은 있지만 시민권이 없다 하여 날 거부했고, 한국 대사관은 동포인 나에 대해 알아서 살라하며 날 거부했지만, 중국은 일본 전역에서 버스 수백대를 빌려 모든 중국 국적 유학생들을 도쿄로 옮겼다. 그때 국가의 힘이란 것을 느꼈다. 베트남 귀족 애들은 학교 앞에 개인 헬기를 주차시켜두고 하나씩 타고 가더라.

 

-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도 먹을거 없으면서 우리가 외국에서 왔다고 오니기리(주먹밥)을 나눠주었다. 하루에 다섯명이 주먹밥 하나를 먹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지 학생들이라고 주먹밥을 하나 더 챙겨주던 일본인들을 잊지 못한다. 내 앞에 서 있던 여성은 생리대 한 곽에서 자기는 두개만 써도 된다고 나머지 한 통을 다 나에게 주기도 했다. 일주일 이상 굶는 상황에서 외부의 사람들에게 먹을것과 편의를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당신은 그런 상황을 겪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행동했다.

 

- 중국의 조선족들이 중국내에서 한국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 음식을 수입하고, 한국 학교를 세우고,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북한이 힘든 시기일 때 집에서 옷 한번 허투루 안버리고 모아 북한에 보내고 한 것에 대해 아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우리를 가난한 범죄자로 바라본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중국인과 다르다고 하여 차별받고,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 차별받는다. 일본에서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한국 유학생들의 눈빛과 태도가 달라지더라. 한국에서 왕따를 당해 중국으로 귀국한 후 자살한 조선족 학생들에 대해 들어 본 바가 있는가?

 

// 그럼에도 왜 중국-시진핑을 지지하는가. 홍콩의 시위에 대해 편향된 의견에 대한 비판, 현재 미국 영주권자인 상황,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에 이야기 //

 

- 나는 나의 의견을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중국이 잘못하면 나를 비난하고, 한국이 잘못해도 나를 비난한다. 중국인은 더럽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씻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고 살고있다. 그런 점에서 매 순간 국가가 내 배경으로 드리워져 있다.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와는 멀다.

 

- 나는 앞으로 어디서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중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친한 이들은 역시나 차별받는 스패니쉬들이다. 한국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나를 내쳤다.

 

-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고 또 끌어내리는 한국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인가 대해 나는 거의 모른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경험이 나와 한국사이의 차이라고 느낀다. 나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 내 국적이 중국이여서가 아니다. 중국 교육이 그만큼 강력하다. 나도 이런 생각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법과 제도라고 느낀다. 중국을 중국으로 어떻게 묶을 것인가?

 

- 중국 사람들은 중국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그 어느 뉴스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중국'이라는 국가를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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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9. 6. 19. 00:23

비판의 소실점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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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8일 장 마감 시가총액 순위.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공개된 기업의 크기 순은 다음과 같다. (■블록 하나는 10조, □블록은 5조를 뜻한다)

 

1. 삼성전자, 265조 ■■■■■■■■■■■■■■■■■■■■■■■■■■□
2. SK하이닉스, 46조 ■■■■□
3. 현대자동차, 30조 ■■■
4. 삼성전자 우량주, 30조 ■■■
5. 셀트리온 25조 ■■□
6. LG화학 24조 ■■□
7. 신한지주 21.6조 ■■
8. SK텔레콤 21.3조 ■■
9. 현대모비스 21.3조 ■■
10. POSCO 20.8조 ■■
11. LG생활건강 20.7조 ■■
12. 삼성바이오로직스 20조 ■■
13. KB금융 18조 ■■
14. NAVER 18조 ■■
15. 삼성물산 18조 ■■

 

삼성전자 + 삼성전자 우량주를 더하면 약 300조다. 삼성전자 제외 하위 기업들, NAVER까지 다 합쳐야 (삼성바이오, 삼성물산 제외) 겨우겨우 300조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의 체급은 무려 6.5배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 1위와 2위의 차이가 6.5배, 300조 Vs. 46조. 예전의 알고 있던 현대니 LG니 하는 것들은 삼성 앞에서 푼돈장사다. 일단 이것이 한국 증시의 현재 상황이다.

 

삼성에 대한 비판 글을 많이 보게 된다. 세계적 압착기의 굉음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지겨울 때쯤 참 새롭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대해 '나쁘다', '비윤리적이다', '공공성이 없다'등의 언어가 과연 삼성전자에 대한 술어로서 적합한 것인가에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삼성의 부당 노동행위, 정치개입, 생산 말단에서 중간까지의 총체적인 착취를 고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하고 동의한다. 그러한 고발과 언술행위가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 300조에 대한 의미를 파헤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순이익은 10조가 넘는다(현대자동차 분기 순이익이 대충 5천억 쯤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금산분리 법이 없으면 삼성전자 일 년만 돌리면 신한지주+KB금융을 살 수 있고, LG전자 13조짜리 구멍가게는 삼성전자 4개월만 돌리면 살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경영권 방어문제로 가격은 크게 달라진다. 고정가로 대충 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300조짜리 기업에 대해서 어떻게 사회적 통제를 해야 하는가, 300조짜리 기업은 어떤 잘못을 하는가, 이전에 300조라는 액수에 대한 의미를 파헤치고 알려주는 주장에 대해서는 많이 듣지 못했다. 이것이 답답했다. 우리는 손가락 길이 7cm나 10km의 출퇴근 거리, 서울-부산의 450km는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서울-뉴욕 11,000km는 가물가물하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인 380,000km는 숫자만 남고 감각은 사라진다(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들어가고도 남는 거리다). 광년, 파섹 등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숫자로서 대/소 비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인간-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돈으로 가 보자. 친구가 100원을 먹고 튀면 피식 웃는다. 1,000원이면 왜 저리 쪼잔하게 사는지 답답하다. 10,000원이면 살짝 짜증이 나고, 100,000원이면 약간 심각하다. 1,000,000원은 바로 전화 들게 만들고, 10,000,000원은 절교, 100,000,000원이면 법원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300,000,000,000,000원은 감각을 벗어나 있다. 물론 이 거대 액수가 어떤 가치평가와 도덕의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라는, 이 탈감각적 숫자에 대한 해석과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300조는 무슨 의미입니까? 300조는 어떤 잘못을 합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이남에 그 300조는 어떻게 녹아 있습니까? 삼성을 옹호하는 푸른피 인터넷 떼쟁이들은 실로 반 계급적 행위를 하는 것입니까? 이제 삼성에 대한 비판은 무슨 의미입니까? 부당함과 부정의함에 대한 의미들은 오늘도 깊이 깊이 파헤쳐져 벌어진 살틈에서 솟는 피들은 고통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만큼 저 숫자에 대해서도 열렬한 접근이 있었으면 하고.

 

삼성전자, LG전자, 소니의 고용인원과 분기별 순이익 등을 찾아 보면 점점 더 황당해진다. 우리 지구에 있는 제조업체 중 삼성전자보다 덩치가 큰 회사는 존슨앤존슨(제약/바이오 430조), 네슬레(F&B, 350조) 이 두 기업 뿐이다. 수치들을 찾아 볼 수록 비틀린 감각들이 계속 끼긱거린다. 어느 시점에선가 항복하게 되고 사건들은 그저 흘러가려 한다.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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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9. 2. 8. 21:49

이토 준지 <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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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 이토 준지씨의 <인간실격> 에 대해서 말씀 해 주신다면? A : 글쎄요... 일단 이토씨의 작품은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습니다만, 다자이 오사무씨의 <인간실격>은 제가 아는 한, 거의 모든 판본을 보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영원의 형식 아래에서 쓰여진 문학이니깐요. 이토씨의 <인간실격>에 대해서는 일단 아쉬움... 실은 좀 더 격하고 부정적인 감정입니다만(웃음), 네. 일단은 아쉬움이라고 해 두죠. 가볍게 들어가자면, 요조씨의 몰락과 방탕의 원인은 일본의 해체와 근대성의 성립에 좀 더 근원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또 저의 이해이기도 합니다. 감정적 괴벽, 투명하게 드리워지는 여성의 호의는 요조라는 존재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 있어서 이토씨의 요조에 대한 해석은 외려 작품의 결과를 원인으로 도치한, 무엇인가 잘못된 공격이 아닌가 해서 의아했습니다. Q : 그 의아함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 A : 예를들어 요조는 인간 보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그 개인이 흉기를 휘두를때, 요조는 그 흉기의 끝에서 피를 흘리는 인간 전체를 봅니다. 그것이 원작이 지닌 영원성 가운데 하나죠. 그렇다면 요조를 탄생시킨 두려움, 그것은 여성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토씨의 해석에서는 남성은 범접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두려움의 층위라면, 여성은 덧없고 제압가능하고 심지어는 알 필요없는 사소한 대상으로서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몰이해의 층위는 자아에서 증폭되고 확장되죠. 그러니까 다자이씨의 요조는 뻔뻔하지 않지만, 이토씨의 요조는 사건이 있을 때 무분별하게 뻔뻔하다는 겁니다. 공포에 짓눌려서 남들이 보기엔 뻔뻔한 행동을 하는 나약한 인간과, 스스로의 뻔뻔함을 공포로 짓눌렸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항변하는 인간의 차이는 드러냈어야죠. 결국 '나'라는 것을 몰라 나는 나일수도 인간일수도 없구나... 이게 요조의 감정인데, 이토씨의 요조는 꽤나 스스로에게 투명합니다. 시각과 텍스트라는 장르적 차이에 기인할지도 모르지만, 여튼 이토씨가 분투해야 할 지점이 빗나갔구나 싶어 아쉬웠습니다. 오사무씨는 생전에 여성의 묘사에 대해 굉장히 천착했을 뿐만 아니라,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여성의 모습을 한, 다리에 시커먼 털이 숭숭 난 남성'이라 힐난하기도 했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이면서도 내밀한 어찌보면 사소설의 정수에 서 있는 <인간실격>에 있어서 여성이란 작가의 한계를 반영하며 회전하는데, 이토씨의 해석은 가볍다고나 할까... 풍류와 극적 장치를 위해 무분별하게 쓰였다고나 할까... 그렇습니다. 물론 이토씨가 여성을 오사무씨처럼 파고들어야 한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시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고 퇴행적인 면은 있었다고 언급 해 두겠습니다. Q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A : 이토씨의 이전 작품처럼 수많은 선들과 어둠으로 눈이 아닌 뇌를 자극하며 넘어가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미성년의 요조를 하녀가 겁탈하는 장면등을 과감한 어둠속에서 배치했으면 하는. 그 뒤에 이어지는 우스운... 성적 어트랙션과 살인 또한 마찬가지죠. 웃기지도 않고 뭐랄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냉담속에서 낙담하게 한다 할까. 이 장면들이 만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독자를 다음 페이지로 이끌지 모르겠지만, 요조가 지니게 된 어둠과 절망에 대해서 그 깊이감을 상실시킵니다. 이게 원작과 가장 불편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요조는 어둠과 성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조라는 사건에 어둠과 성의 난해함이 들러붙어 있는 것이죠. - 2019. 01. 쇼쿠호메이칸誌, 고바야시 다이치로, 작가 그리고 작가, 부분 발췌 및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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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9. 1. 8. 23:48

냉장실에 잘 익혀둔 콜라 한 캔을 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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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리고 2018년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해였습니다. 2017년 연말, 주변 사람들과 "올해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내년에는 좀 나아졌으면"하고 말을 나눈 기억이 있는데, 2018년은 2017년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발작적인 웃음과 몇 번의 광기는 모두 저 두 해의 불운과 비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살덩이의 움직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패시브였죠. 그리고 이어지는 발버둥. 돈을 벌어야지. 그래 돈을 벌자. 아, 담배도 끊자. 그래 살도 좀 빼자.


그래서 돈을 벌었고, 담배를 끊었고, 살도 뺐습니다. 정말 괴로운건 그 모든걸 제가 원해서 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처음 만나는 두려움에 대한 반사작용이었습니다. 공포는 아직도 제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019, 올해도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겹쳐 평일 24시간 내내 정확하게 저 혼자만 있게 되었습니다. 기약없이 계속 홀로 있다는 것은 실제로 몸과 정신에 고통을 야기합니다. 대출이나 연체로 인해 추심당해보신 적 있나요? 그것과 거의 느낌이 비슷합니다. 고독감에 의해 다른 사고기능이 마비됩니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 전화라도 걸어오면 전 재산을 다 줄만큼 취약해집니다. 카톡 한번 울리면 몸이 끔쩍끔쩍 놀랍니다. 모르는 번호가 뜨면 뇌에서 폭죽이 터집니다. 이런 연결이 저의 하루를 구원한게 벌써 몇 번입니다.


외로운 감각에 몸과 정신이 피폐하게 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진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의 절대적 접촉면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그 줄어든 접촉면을 유지하는 기술에 대한 문제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불안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스웨덴의 누드 자전거 대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회에 참여한 인간들은 울퉁불퉁했습니다. '아 진짜 사람이네'하는 감탄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상실한 감각이 그런 것 같습니다. 울퉁불퉁한 사람이 보고싶습니다. 몸도, 마음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인간이라는 것이. 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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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10. 7. 00:11

Order No: 1825554 - Sat, 06.10.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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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 No: 1825554 - Sat, 06.10.18 (16:23)

Last update: Sat, 06.10.18

Status: Order P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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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10. 5. 00:45

어떤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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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텍스트에서 (이는 마치 세계를 구원하는 - 지나가던 선비 혹은 스님과 비슷한데) 하루끼와 류를 가지고 싸우던 일화가 많이 나왔다. 혹은 내가 그런 텍스트를 많이 봤던가. 여튼 요점은 하루끼가 찌질하고 류가 나았다 하는건데, 둘 다 무라카미 어쩌구이니 그놈이 그놈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루끼의 초기작, 그러니까 100%의 여자아이를 만난다거나 18세기 터키의 조세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류의 중후기작, 여자의 발목을 잘라 그 위에 고통을 제거해주는 스프레이를 뿌린다음 섹스를 즐기는 클럽이나 뭐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대체 하루끼와 류를 비교하는 일화가 왜 그토록, 지나가던 선비 혹은 스님처럼 현대의 어떤 텍스트들 사이에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다. 사실 "무라카미"라는 것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무라카미" 이 얼마나 강렬한가? 대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성씨가 아닌 이름의 강렬함을 이에 대조해보라. 만약 믿지 못하겠거든, 생각해보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강렬한 이름이 아니라면, 그 상의 권위가 이어졌겠는가?)


불행이도 (우리 모두의 실존이 마찬가지이듯) 이러한 대조와 슬픔이야말로 마치 불교의 인생=고통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기능한다. 항상 비웃던 하루끼가 어느날 돌부리에 걸리듯 떠오르고, 그나마 건전하다고 믿던 류도 별볼일 없던 욕정의 노예(machi like Dmitri)이듯 고귀함과 저속함은 우리, 유기체 안에서 무모순적으로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미사에서 젊은 신부는 "예수가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처럼 옆의 이들을 대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레닌과 세 동료처럼, 맑스를 만난 엥겔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는 회고적 관점이다.) 신화가 아닌 삶의 태도로서 베드로를 만난 예수, 이 관점에 있어서 나는 하루끼보다는 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그는 독자를 베드로처럼 만났다. 그에 반해 하루끼는 문학의 제단위에 욥 혹은 이사야가 되지 못했다. (활활 불타라~~~)


무라카미 류, 그것은 결여였고, 그것은 구제받지 못할 남성성이었고, 사세보 항구였으며, 동두천 혹은 용산이었고, 남아있는 영등포 같은 것이었다. 류는 그래도 도쿄가 아닌 서울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어떤 지성들(혹은 우리가 좋다고 신나하던 그 사람들)은 그래서 反-도쿄로서의 서울이었지, 서울로서의 서울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차이를 누군가 이해한다면, 음...


글은 지우면 되지만, 그리움은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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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6. 3. 21:07

시계를 찾아 떠난 인터넷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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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나는 시계를 사리라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이쁜 시계가 가지고 싶었다. 남들도 아는 시계이면서 동시에 나의 개성이 드러나는 그런 시계가. 예를 들어 Seiko SARB 033 (약 35만원) 같은 경우 시계를 처음 사려는 나에게 아버지 세대의 감각과 automatic의 즐거움 등을 줄 것만 같았다. 기억 저편 어딘가에서 어린 시절 저런 시계를 본 것만 같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이 시계가 좋다고 쑥떡쑥덕 하니, 왠지 이 시계를 사면 비싼거 사면서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만 같은 것. 싫다)


Seiko SARB 033(black), 035(ivory)



그렇게 살짝 타오른 시계에의 욕구가 수그러든 건, 별 볼일 없는 나의 재정상황과 급변하는 한반도의 정세 속에 요동치는 주식, 감정과 신체의 기복에 의한 어려움 때문이었다. 별다른 목적없이 시계를 멍하니 계속 보다보니 5만원만 더, 10만원만 더 하며 고가품을 기웃거리게 되고 결국 100이나 200이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를 생각했다. 손으로 시계밥 돌돌돌 돌리는 것 보다 잔고장 없고 튼튼하고 정확한 Quartz가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Grand Seiko SBGT 035


Grand Seiko SBGT 037


200만원 이상대의 시계로 깔끔한 디자인에 간지넘치는 한자... 漢字가 보인다. 月火水木金正...  Quartz의 최강자 그랜드 세이코를 무리해서 구매할까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살 돈은 마련되어 있긴 했는데, 시계에 이백만원을 쓴다는게, 그리고 성인이 되어 시계를 내 돈 주고 사 본적이 없는데, 시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쌓지 않고서 수백만원의 구매 행위를 한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접었다. 하지만 돈을 모아 일본에 가면 GS를 사겠지.


여튼 또 신변에 이런저런 (중략)하여 시계 살 일이 생겼다. 그래서 내 분수와 소득에 맞춰 용도에 필요한 시계를 구할려고 이런저런 디자인들을 살피다 드디어 두 개의 후보를 만났다.


카시오 AW-90H 시리즈


카시오 AW-90시리즈 중에서 (왼쪽에서 부터) 1번 푸른색과 3번 흰판을 두고 고민을 했다. 1번은 너무 군대에 있을 때 쓴 시계같고(근데 아직도 이쁘고 좋아보인다), 2번은 다 좋았는데 숫자 7 6 5가 시계의 밸런스를 짜부라뜨려 싫었고, 4번은 색 배합이 늙수구레 하여 싫었다. 결국 3번으로 낙점, 22,350원을 내고 쇼핑 사이트에서 주문완료를 했다. 그런데 적절한 가격, 듀얼타임과 별개로 방수기능이 50m였다. 샤워하면 간당간당한 수준. 그때 난 깨달았다. "아 내가 시계차고 샤워를 하고 싶어하는구나" 이로서 내가 시계를 원하는 두 번째 기준이 생겨난 것 같다. (첫 번째 기준은 Quartz!)


부랴부랴 주문을 취소한 후 내가 생각하는 시계의 기준을 생각해 봤다.

1. 신뢰, 정확, 편리 = Quartz

2. 듀얼타임(아날로그+디지탈)이 되어야 하고, (꼭 필요한 실용성)

3.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100m 이상의 방수기능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고집!)


샤워를 할 수 없는 카시오 AW-90H... ㅠㅠ 주문 취소를 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지 않는데 매일 저 시계를 보며 괴로워하다가 그냥 던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계는 매일 보는 것이다. 그러면 기능도 좋아야 하고 내가 보기에 이뻐야 한다. ㅠㅠ... 이게 너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사람들은 美의 가치를 탐하다 어떤 공허함에 직면하지만, 우리가 생산하는 가치의 대부분이 또한 그 美를 향해 탕진된다. 그래서 美에 힘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쁜 시계가 필요했다. 허나 이때까지는 저 기능들을 생각하며 이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인식을 못하고 있었다.


So, 쿼츠인데 튼튼하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시계? 그럼 무조건 G-Shock 이지 ^모^

G-Shock G100BB-1A // 86,250₩ (배송비 포함)


GA-800-1A // 86,530₩ (배송비 포함)


GA-100-1A2DR // 91,190₩ (배송비 포함)


선택과 배제를 반복하며 경향이 잡혀나갔다. 블루 계열 좋고, 난잡하고 경망스러운 것 싫고, 여유자금을 시계에 투자할 만큼 아직 시계를 잘 알진 못하고. 듀얼타임이 좋은데 잘 보이도록 시안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런데 또 알판이 너무 크면(빅페이스) 어린 사람 같아보이는 게 싫고. 나이도 있는데 차라리 G-Shock 라인업 중에서 티타늄 등 금속으로 만드는 고가 라인업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플라스틱 재질은 안 이쁜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G-Shock과 어울리긴 힘든게 아닐까...


시계가 마치 나의 identity를 표현하는 것 마냥 여러 고민들을 하며 새벽에 인터넷 서핑을 했다. 그러면서 최초 22,350원의 시계가격은 슬슬 10만원 대를 넘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10만원이나 시계에 써야 하나라는 생각과, 10만원 쓸거면 좀 더 써서 이쁘고 튼튼하게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슬금슬금 기어오른다. 그러다 문득, G-Shock은 애들이나 차는 시계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감정이 너무 격렬해서 G-Shock에 대한 모든 고려의 마음이 단순간에 사라졌다. 부연하자면 G-Shock이 비지니스를 하거나 편안하게 일상을 가져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난 조금 진지해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샤워를 할 수 있고, 튼튼하며, 가격이 저렴한 G-Shock을 그런 활동 반경의 이유로 인해 구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G-Shock이 충분히 이쁜 시계이지만 나에게는 이쁜 시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카시오 관련 페이지를 닫고 다른 시계들을 처음부터 다시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언젠가 적절한 소득을 올리면 G-Shock 고급라인으로 하나쯤 꼭 사고싶다. 계속 고민하며 보다보니 정이 들었다. 돈 많이 벌면 탄탄하고 묵직한 금속제 라인으로 하나 장만해야겠다.


G-Shock에 대한 고민을 마친 후 나의 시계 여정은 다음의 기준에 의해 정렬되었다.


1. Quartz

2.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 듀얼타임 또는 GMT

3. 샤워 및 기타 거친 환경에 대비하고자 100m 이상 방수

4. 소재의 튼튼함, 디자인의 견고함

5. 지불 가능한 가격대일 것 


여기서 GMT의 조건이 붙게 된 것은 듀얼타임으로 할 경우 구매가능한 시계의 폭이 너무 좁아지고, 디자인적 제약이 커저셔 약간의 옵션 확대를 도모한 것이다. GMT를 활용하게 된다면 굳이 듀얼타임을 추구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기능적인 요구가 충족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계한번 보고 - 음, 한국 주식시장이 열렸군. 매매 ㄱㄱ~ 이런거) 이런 위의 4가지 항목을 만족시키는 시계 제조사가 있었는데 바로 TIMEX였다.


Timex T2P427DH // 미국 구매대행 약 120,000



Timex T45181 // 미국 구매대행 약 54,000


타이맥스의 요 엑스페디션 모델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100미터 방수, 듀얼타임, 싼 가격, 튼튼한 외관... 그러나 수많은 시계를 거치며 나의 눈과 취향은 조금씩 오르고 있었고, 5만원대의 가격은 나에게 '음... 내가 사기엔 좀 싼거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몇일 전 까지 11번가에서 22,350원짜리 시계를 주문해 놓고 두근거리던 바로 그 사람이 나인데...!) 타이맥스 T45181 디자인도 너무 아웃도어 지향이었고, 색도 마음에 안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훌륭한 시계임에도 트집을 잡고 싶은거 보니 역시 - 이쁘지 않은 것이었다. 아, 이쁜게 뭐길래.


타이맥스의 듀얼 타임 제품군을 스캔하다 정말 곧바로 구매하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 사진에서 나온 제품이다. 근데 단종되어서 구할 수가 없다. 전 세계 인터넷 그 어디에서도 파는 곳이 없다. ㅠㅠ 이 제품을 써 본 한글 사용자의 후기가 딱 하나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수 없기에 타이맥스가 살짝 미워지고 멀어진거 같아 브랜드 전체에 대한 스캔을 포기하기로 했다. A라는 집에 가장 이쁘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걸 더이상 구할 수 없으면 아무리 좋은게 막 있어도 A라는 집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Timex T41361 Expedition // 10년전 약50$ (단종)


이 시계는 모든게 좋아보였다. 100미터 방수, 듀얼타임, 간결한 베젤, 팔목 털이 쑥쑥 뽑히지 않는 가죽밴드, 깔끔한 시안성, 약간의 여성스러움, 저렴한 가격. 단종이 되었다니 더 큰 욕구가 마음에 일고, 아마존의 리뷰까지 샅샅이 읽게된다. "이거 진짜 좋고 기능적이고 싸서, 너가 하나 샀다면 나중에 다시 필요해질꺼니까 하나 또 사서 필요할 때를 대비해 둬. 근데 타이맥스 초침소리 좀 큰건 알고 있는거지?" 뭐 이런 내용이었다. 시계바늘 소리를 어릴적부터 싫어하던 내가 드디어 타이맥스를 싫어해도 되는 이유를 찾는 순간이었다. '그래, 저거 사면 분명히 이쁘지만 시끄러워서 짜증이 날꺼야'


세이코, 카시오, 타이맥스를 거치면서 내가 선호하는 미감과 취향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접근하게 되었다. 대량생산 느낌을 좋아하고, 시안성이 높아야 하며, 시계를 보는것은 곧 현재시각을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미녹스같은 혼돈계 제품은 안보게 되었고, 타이맥스 위캔더 계열의 간결함과 미니멀에 좀 끌리게 되었다. 하지만 기능적인 것 - 듀얼 혹은 GMT! 이렇게 조건이 늘어나니 미니멀리즘은 멀어지고, 조건에 걸맞는 시계는 점점 찾기 힘들어졌다. 다시 정리해보자.


1. Quartz

2. 듀얼타임 또는 GMT

3. 운동 및 샤워를 위한 100m 이상 방수

4. 소재의 튼튼함, 디자인의 견고함 (전고 1cm 내외)

5. 지불 가능한 가격대일 것 (30만원 이하) 

6. 높은 시안성


상품의 바다에서 멍하니 떠내려가는 척 놀랜드처럼, 나는 구글과 아마존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위의 조건을 윌슨 삼아 항해했다. 출장용 시계 추천, business trip watch, dual watch, gmt watch, 각종 시계 메이커 이름을 구글창에 때리고 또 때렸다. 한국의 커뮤니티나 블로그는 G-Shock 5600을 사라는 말만 서로 돌려돌려 하다가 인천공항 직구한 비싼 시계 자랑밖에 없었다. 조건과 그에 따른 접근보다는 남들도 다 알고 있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안쪽팔리면서도 스스로는 유니크하다 느낄 수 있는 제품에 다들 우와~ 하는 분위기였다. 외국의 포럼은 듣도보도 못한 시계들 대잔치라 내가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고, 시계 전문 마켓사이트의 리뷰나 스펙이 도움이 되었다.


흐음, 갑자기 - 내가 이런식으로 주식을 연구하고 샀으면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주식은 구매 즉시 가격이 하락하는 재화가 아니지만, 내가 사려는 일반적인 저가 시계는 일단 구매 즉시 가격이 하락하는 재화이기에 내가 부여하는 worth와 시장의 value가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을 습관적으로 더 맹렬하게 쫓게 된건 아닌가 싶다. 주식은 들고있다 무거워지면 보내면 되지만, 이건 계속 내 손목에 들고 있어야 하니깐.


에에, 여튼, 그래서, 결국 내가 찰 시계를 발견했다. '발견했다'고 말 할 수 있게되어 좋다. 회사 이름도 생소한 베르투치(Bertucci)의 A-2TR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Bertucci A-2TR // 216$


베르투치사의 A-2TR이라는 제품으로 베르투치사의 모든 시계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티타늄으로 제작된 이 제품의 핵심은 단단함 / 100미터 방수 / GMT / 높은 시안성 / 미국 지인을 활용한 20만원대 구매 / 유니크함(한국에서 이 모델을 다루는 상점 또는 블로그 포스트가 아직은 없는 것 같음)으로 내 입장에서 요약된다.


거의 1주일간 여가시간에 시계 관련 정보들을 보며 헤메었는데, 일단 내 경제수준에 20만원 정도를 쓰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는 판단에 구매에 자신감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 시계 관련된 정식 수입사와 회사의 2003년에 시작한 베르투치의 역사를 알리는 포스팅은 있었지만, 전혀 구체적이지 않았고 번역된 내용도 초라해 별 도움이 안되었다.


A-2TR모델의 스펙은 다음과 같다


http://www.bertucciwatches.com/Bertucci/GMT.html


- 일체형 티타늄 바디

- 회전 개폐식 스크류 용두와 뒷판

- 신체의 편의를 위한 4시 정각 용두 (3시 정각에서 -30˚)

- 날짜 창

- 시계방향 회전 베젤

- GMT / 2지역 시간

- 전 파츠 금속제 스위스 쿼츠 무브먼트

- 강화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

- 배터리 수명 3.5년

- 3년 품질 보장


- 나일론 스트랩 포함 68g

- 내경 30.5mm / 외경 40mm

- 세로 총장 51mm

- 본체 두께 11.5mm / 총 두께 14mm

- 22mm 나토밴드


- 특수기능 A : 배터리가 낮을 때, 초침이 4~5초를 이동 후 멈춤을 반복함. 이를 통해 사용자는 배터리가 낮은 상황을 인지하고 연속적인 시계 사용을 위해 배터리 교체를 할 수 있음.

- 특수기능 B : 핸즈와 자판의 스위스 수퍼 야광이 장착되어있음. 햇볕이나 실내 조명을 쬔 후 몇시간 동안 충분히 가시적인 빛을 냄. 이를 통해 시계의 기계적 약점부분인 용두를 누를 필요도 없으며, 배터리를 빠르게 소모하지도 않고, 양 손 모두 시계를 조작하지 않아도 됨.


- homepage : https://bertuccifieldwatches.com/series/a-2tr-vintage-gmt/



'그래, 이거 사자'


아마존 셀러가 216$에 팔길래 냅다 구매 돌돌 했는데 서울 코리아로 띄워 보내주는 제품이 아니다. 250$에 파는 사람은 서울 배송에 50$에서 290$까지 세금 포함 추가금이 요구되었다. 비용이 과하다 싶어 일단 미국 지인분에게 부탁드리기로 했다. 최종 결정을 마친 다음 지인분에게 카톡과 링크와 구매의 사정을 설명드렸다. 흔쾌히 구매를 대행해주겠다면서 사람에겐 자기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건네왔다.


대화를 마친 후 그동안 시계를 사기 위해 어떤 정보들과 페이지를 오갔나 궁금하여 크롬 히스토리 창을 보았다. 시계를 찾아 나선 과정이 빼곡했다. 블로그, 시계 메이커, 커뮤니티, 본 기억도 안나는 각종 시계 이미지. 이런 식으로 한 인간의 잡다함이 생겨나고 굵어지는 거지. '자기보상'


MWC의 제품들 또한 위의 조건들과 맞긴 했지만, 롤렉스 디자인이라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TIMEX라는 미국-상징을 한번 차 보고 싶어서 타이맥스의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았지만, 내 마음을 딱 부러뜨리지 못했고, 조건에도 한 두개씩 어긋났다. 내가 제시한 조건이란게 (내가 느끼기에는) 그리 빡빡한게 아니었음에도, 맞는 제품을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Victorinox의 제품은 너무 정적이고 재미가 없었다. 빅토리녹스는 나에게 항공기에 들고 탈 수 없는 칼 만드는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다. 구매하려는 가격대 중 가장 비싼 30만원 중반대의 가격임에도 "으아악! 이거이거!" 하는 느낌이 없다.


차라리 그냥 G-Shock이나 사버릴까 하는 마음이 몇번이고 들었다. 구매 후 내 마음에 안들었을 때에도 전혀 타격을 입히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G-Shock은 정말 편리하고 적절한 선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종적으로 구매를 결정한 베르투치 GMT모델의 경우 무엇보다 내가 필요로 했던 조건과 정확하게 일치했고, 여름이 다가오는 와중에 편해보였다. 베르투치를 A-2TR 모델을 다루는 한국의 온라인 마켓이 거의 없고 심지어 그 흔한 블로그 포스팅도 없었다는 점은 처음에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만큼 대중,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은 신경 쓰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메이커를 모른다는 것이 나에게는 적절한 장점으로 역전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20만원으로 부담 없는 가격으로 유니크함과 단단함, 원하는 기능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식을 하는 입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구매하는 기분이랄까. 충분히 시장을 검토하고, 내가 가진 매매의 조건들에 부합하는 주식을 살 때의 은밀한 즐거움. 야금 야금 알려졌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알고있고, 이건 오를거야 하는 기분.


Bertucci A-2TR을 만나며 나의 시계를 찾아 떠난 인터넷 여행은 아마존 지인 구매대행으로 끝을 맺었다. 아마 구매동기가 없었다면 그냥 하릴없이 시계 메이커와 다큐멘터리와 사람들의 리뷰를 보며 혼자 '으음~'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여러 사람들 만나 소득이 증가하면 또 더 좋은 모델이나 나 스스로의 필요에 따르는 모델을 사기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왔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나 부모님을 위해 선물을 하고 싶기도 하다. 가격과 디자인, 소재와 확장성에 있어서 Bertucci A-2TR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내 마음이 배신당하지 않고 "택배요~" 소리를 듣고싶다. 쇼핑은 너무 어렵다. 



** 저는 시계 구매에 대한 도움을 드리지 못합니다. 한국 쇼핑사이트의 경우 경유하는 가격비교 사이트에 따라 최종적으로 표시되는 가격이 다릅니다. 

***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시계를 사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우연히 들렀는데 열정과 기괴함과 익살이 느껴져서 좋아하게 된 블로그 하나 링크. 뻥과 장난끼와 진지함이 엉망진창 뒤섞여 비밀로 딜린 수백의 댓글들 내용도 궁금해짐. 그냥 읽으면서 미친듯이 낄낄댔음. "완벽"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개웃김.


https://blog.naver.com/knowledgetip/22112504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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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5. 17. 20:28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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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꼭 보리라 생각했던 것이 30년이 걸릴줄은 몰랐다. 어릴 적 비디오 가게 앞에서 본 이 영화의 포스터는 너무나도 강렬했다. 막막하고 답답하던 유년기의 나에게 포스터는 야했고, 미국이었고, 나중에 볼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영화는 89년작이고, 한국에서 비디오 가게 붐이 불어닥친게 88년 즈음이니 비디오 대여점 앞에서 포스터를 맹렬히 보며 생각하던게 90년 정도의 일이 아니었을까.


30년을 돌아 오늘 처음으로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Last Exit to Brooklyn"을 보았다. 보는 내내 마음이 비통했다. 그녀에게 닿고싶다.


Tralala



(요즘들어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는데, 마음이 편해지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한 편 한 편 보는데 마음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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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8. 3. 22. 05:38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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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죽음'이라는 단어의 강렬함, 통속성, 너무나도 선명해서 사실 그 어떤 의미를 지시하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단어의 불능과는 거의 무관하다. 몸의 진기가 다 빠져나가고 울어야겠는데 눈물도 나오지 않는, 덜컹거리는 버스, 진눈깨비 그런 것 처럼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죽어야겠다. 나는 대체 왜 무엇때문에 번민하고 고개를 숙이고 사랑을 갈구하는가. 죽어야 겠다. 이 생각만이 어제 밤 9시 21분부터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몸부림의 격렬함과 동일한 크기로 상존하는 이 세계의 무의미함. 이 세계의 무의미함에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저항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다가 몇 개월 후면 나는 툭 부러지고야 말겠구나, 내가 부러져서 나뒹구는 꼴을 내가 참을 수 있을까. 그냥 죽을까. 진눈깨비가 볼을 스쳐 녹듯, 벗어던진 내 외투 안에 스며들듯 그렇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말도 안되는 한국영화들을 보며, 영화의 모든 것들을 불쌍히 여겼다. 배우들이, 스탭들이, 명멸하는 빛과 소리들이 불쌍했다. 저것들 또한 이 세계의 무의미함에 맞서 토렌트를 거쳐 내 방안의 27인치 모니터와 3만원짜리 스피커를 통해 어떤 의미가 되고자 하는구나. 하지만, 무의미했다. 


무언가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사실 거의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그렇게 내 안의 혹은 공통의 무언가를 외화(外化)한 후 그 고통의 반대급부로 어떤 뿌듯함을, 인정을, 사랑을 갈구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비참하고 가엾다. 죽음마저도 지칠것 같은 생각들 또아리다. 답답하여 버스를 갈아타며 말보로 레드를 두 갑 샀다. 올해들어 처음으로 산 연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와 고양이에게 캔 식사를 수저로 콩콩콩 찧어 주고, 보일러를 올리고 육신의 흥분으로 생각들을 털려 해도 도통 방법이 없다.


글을 SNS에 올려 어떤 구조신호를 혹은 이해를 받기도 귀찮았다. 중력의 비틀림에 걸쳐 궤도를 튕겨나간 돌덩이처럼, SNS는 나에게 안정적인 항성계였고 나는 그 항성계의 따스한 빛을 받을 일 없이 튕겨나간 돌덩이다. 하소연 할 곳 없이 그저 이상하게 늙어가고 있는 나. 막상 하소연을 하라 해도 어떤 감정인지 끄집어내지 못하겠다. 내 앞에 찰흙덩어리를 주고 지금 감정의 크기를 묘사하라 해도 난 별다른 조작을 가하지 못할 것 같다. 감정의 덩어리가 있고, 그것은 벙어리다. 


이런 생각들로 밤을 버텼지만, 아직도 밖은 어둡다. 내가 왜 이 어둠에 빠지게 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술 때문이다. 3월 21일의 미친 진눈깨비와 함께 마셨던 술 때문이다. 술이 나쁜 것이다. 술이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이다. 이 더부룩한 속과 광대뼈 아래로 느껴지는 미지근함과 우울, 이 우울은 모두 술 때문이다.


아니, 하나도 우울하지 않은데 그저 계속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울부짖지 않는다. 나는 슬프지 않다. 나는 아주 평온하고 합리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해시키고 싶지 않다. 또한 이해받고 싶지 않다. 현재의 상태가 일종의 발작이고, 두통일 뿐이라 생각한다. 나는 시간을 흘러보내며, 글을 쳐대며 저항할 뿐이다. 밤새 우주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코코아(무설탕)을 타 마시고, 물을 마시고, 고양이의 생사를 살피며 견딜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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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7. 10. 7. 04:07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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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새벽 2시 30분. 모기 한마리가 날아든다. 모기가 내는 소리에 나는 헛박수나 헛뺨을 때린다. 신경을 긁어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잠옷 한 겹 벗고 방의 불을 켠다. 덤벼봐라, 손가락 사이로 시커멓게 짓이길테다. 보이지 않는다.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피곤함이 밀려오지만 잠을 잘 수 없다. 모기다.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다. 아마 나에게는 그냥 잠을 잔 후 피 몇방울 헌납과 십자빵을 동반한 긁기를 수행하는 편이 훨씬 이익일 것이다. 그게 싫다. 모기이기 때문이다.


난 모기를 잡기 위해 불을 켰지만 내 생각에 잡혀먹히려 한다. 왜 사는게 수십년 째 이모양인가. 울컥대는 몸의 욕망들을 하릴없이 해소시켜야 하고, 테트리스처럼 쏟아지는 과제들과 요구들을 수행하며 내 일신을 편히 뉘이게 할 돈을 번다. 이 모기새끼들. 도저히 이기려 해도 이길 수가 없다. 매년 4월 부터 10월 까지, 일년의 절반이 모기다. 추위를 더위보다 훨씬 선호하는데 한국의 더위와 함께 동반되는 우울한 습도와 별개로, 겨울에 모기가 없다는 것도 이 선호에 일조한다. 모기가 없는 겨울.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너무 멋지다. 빨리 겨울이.


모기 때문에 잠을 못잔다. 모기 때문에 담배를 물었다. 저 조그마한 아미노산 프로그래밍이 수행하는 놀랍도록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공격에 나라는 유기체는 너무 미약하다. 맹장수술 이후 상처가 잘 낫지 않는데, 그것이 나를 더 모기에 취약하게 만든다. 인공지능 어쩌구가 나오면 난 모기잡는 집사를 살 것이다. 빨래, 청소, 요리, 화분에 물 주기, 고양이 밥 주기 등등은 나에게 적절한 만족감과 노동의 요구들을 일깨우지만, 모기잡기는 그 쾌가 고단함보다 크지 않다. 모기를 때려잡지 않는 과학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다.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아, 모기가 사라졌을 경우 위험에 대해 아직 예측하지 못한다구요. 네, 그 입장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모기란 말입니다. 심하다구요.


해소되어야 할 욕망이지만 부질없다. 밥 먹고 싶지만 때 지나면 똥 싸고 싶고, 신나게 놀다가도 내 땀과 체취로 가득한 이불로 쳐 들어가고 싶듯, 모기는 그런 나의 굴레안에 영원할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유기체로서 기능을 정지해도 몇 분간은 모기가 노릴것만 같다는 생각에 모기가 커 보인다. 이건 신神과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음으로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전능함, 내 밤은 모기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울컥하며 올라오던 몸의 욕망도, 가까스로 잠들어야 한다고 외치던 뇌의 셧다운에 대한 요구도 모기의 괴롭힘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내 시야안에 띄일것이라 생각했지만 잠잠하다. 적에 대한 철저한 무력감은 사랑과 닮아가는 것인가. 정말 모기가 싫다. 싫다. 너무 싫다. 연속해서 네 마리를 잡았던 지난 밤이 달콤하게 떠오른다. 난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모기가 있는 한 쉽게 잠들 수 없다. 나는 분명 모기에게 피를 빨리겠고,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도 몸도 편하겠지만, 내 의식과 모기는 양립불가능하다. 하나가 철저히 침묵해야 한다. 그게 날 돌아버리게 만든다. 욕망보다 지독하고, 일보다 버겁다. 그것도 매년, 일년의 절반을!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 인간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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