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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7. 9. 11. 01:43

새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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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지옥.


천국의 이야기에 관심있다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나 역시도 천국에서 이 세계로 유출되는 소문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아니, 좀 이렇게 문장을 내리다보니 좀 진지해진다. 천국에 관심을 가지는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새지옥에 들어왔다. 여기는 신호등 알사탕과 흰 쌀밥위에 얹은 김치참치볶음으로 겨우 달래오던 내 악마가 새로이 만든 지하실이다. 새지옥. 뉴... 헬... 뭐, 그런거다. 지옥은 얼마나 참신해야 하는가. 또한 지옥은 얼마나 격렬해야 하는가. 적어도 언어와 관련된 모든 지성은 지옥에 매진했다. 


새지옥의 양상은 이러했다. 나는 2017년 9월, 난생 처음으로 장기간의 현기증을 앓게 되었다. 정확히 9월 1일 새벽 2시에 누워서 최첨단 아이폰6 32기가 스페이스 그레이로 클래시 오브 클랜을 하는데, 갑자기 핑~ 하면서 어지러웠다. 40년 하던 세탁소 때려친 부모님은 제주도로 망명가버리고, 혼자 집에서 까붕이랑 덱데굴 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몸에 이상신호가 오니 일단 겁이 났지만, 잤다.


자고 일어난 9월 1일 오후, 망원동으로 나가는데 계속 어지러워 약국에 들어갔다. 약사는 나보고 저리 가라 한다. 혈색좋은 중년이 내 팔뚝을 칭칭감아 어쩌구 한다. 혈압은 정상인데 어쩌구 그래서 6개월치 약이 6만원... 비싼데... 그럼 3개월치 절반해서 3만원... 좀 그런데... 그럼 이 비타민제제 5천원... 그래서 비타민과 어쩌구 뭐 영지천 그런 한약비슷한 그런거랑 알약하나 먹었는데 효과는 개뿔 씨발 내 오천원.


여튼 망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갔지만 계속 어지러웠다. 두통은 고3때 앓아본 이후 단 한번도 앓지 않았고, 2014년에 터진 맹장염(이것은 전 인구의 3%가 겪는 인류의 원쑤!!!)을 제외하고 딱히 병원신세를 져 본적도 없는데, 고개를 들면 계속 핑글핑글 돌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난간을 티내지 않고 근엄한 척 찾는 내 모습에 북핵위기보다 더 해법이 절실했다. 아 씨발 김정은 개새꺄.


여튼 그렇게 매일매일 현기증이 1주일 가량 되었다. 현기쯩 터지기 직전에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뭐 터진다음에도 계속 꾸었고. 심지어 악몽을 꾸지 않은 날도 악몽처럼 기억이 생생했고, 왠지 악몽을 꾸지 않아 섭섭하기까지 할 정도로 매일 악몽을 꾸었다. 근데 아무도 믿지 않음. ㅇㅇ... 왜냐하면 살이 안빠졌으니까. 살은 모든 것을 증거한다. 씨발 메를로 뽕띠 개새꺄, 그럼 노인의 살은 늙은 정신이고 뭐 애기살은 그럼 뭐 앳된 정신이여? 좌우간 프랑스 놈들 너무 얄미움. 여튼,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래저래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 십수년 간 술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술을 퍼마셨고, 엄한 말 한다 해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한다는 이유로 별의별 인간의 잔혹함과 밑바닥 이야기를 퍼들었던 내가, 드디어 당신들에게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 지점에 있어서 다자이 오사무는 옳지.)


이 상태로 다시 2017년 9월 8일 9일 10일을 부산 - 대구 - 대전을 전전했는데, 할 일은 막 테트리스처럼 쏟아지고, 짐은 어께를 짓누르고, 현기쯩 티 안낼려고 에헷에헷 거려야 하고 돌겠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10일 오전 10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공원 앞에서였다. 그때, 난 국채보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저따위가 무슨 기념인가... 로 일단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의미를 부여하고 으쌰으쌰 한 것을 기억하는게 뭐 어때서,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국 박물관 앞 트라팔가 광장에서 빅 벤으로 걷다보면 별의별 전쟁참전 장군, 아재, 아지매, 어쩌구가 나온다. 거기에 있던 여성들을 기념하는 조각상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좋았었다. 사실 그날 특별하게도 런던에 비가 내렸다. 똥양인인 나는 부르주아들이 드나들법한, 나무로 장식된, 두꺼운 글라스가 있던 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마 빅 벤 건너편이지 싶었는데, 영국은 물가가 비싸서 그런데 함부로 들어갔다가 속옷까지 몽땅 탈탈 털리고 국제미아 되었다가 신장은 멕시코에, 불알 한쪽은 아이슬란드에 이주장기 비자 받고 수출된다.


그렇게 나는 새지옥에서 벗어났다. 현기증. 고개를 들면 어지러운 세계. 다행이도 빙글빙글 돌지 않았다. 물론 나미를 기억할때 사람들은 빙글빙글을 주로 기억하지만, 신승훈이 리메이크 한 '님의 계절'이라는 명곡이 있다. 님, 나는 님을 생각한다. 별들의 주기와 인간의 주기는 딱히 관계가 없어보이고, 변덕이 문제다. 변덕. 목마른 사슴은 연못을 찾지만, 갑자기 입술에 물이 닿으면 삼투압 작용으로 인해 오줌이 나온다. 똥오줌 속에서 사슴은 번민한다.


어릴적 김성동의 <만다라>라는 불교소설을 읽다가 해탈의 꿈을 얼핏 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드니 그런거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해봤자 내일 또 똥싸야 하고, 누으면 등허리 막 배이고, 개그 보면 웃고, 나뿐놈들 보면 막 화나고 그런거다. 내 인생의 첫 깨달음은 고딩때 4분단 두번째 줄에 앉아 쳐 자는데 해가 막 씨발 존나 뜨겁고 따갑고 미치겠는게라. 근데 내가 화내봤자 해가 사라짐? ㅋㅋㅋㅋㅋ 그럴리 없음 ㅇㅇ... 그래서 그때 아, 씨발 내가 저 해 가지고 뭐라 할게 없다. 그냥 가만히 쳐 자자... 했는데 존나 마음의 평화가 야동 800기가가 스쳐간 하드디스크처럼 찾아왔다. 그리고 또 몇개 깨달은게 있는데, 그러니까 시나 음악이나 인간이나 한번 내 안에 들어와서 요동치고 지랄이면 그게 다시 쑥 하고 어느날 나가야 좀 말도 걸어보고 사랑했노라 평가도 할 수 있는데, 그거 강제로 안되는거라서 그냥 헤헤 거리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거. 그리고 또 뭐가 있었는데 여튼 다 까먹었다. 근데, 까먹으면 내 안에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욕망을 투사하는 저 아사리판에서 난 좀 벗어나고 싶다. 이제 뭐 불끈대는 것도 없다. 느그들 쒞꺔마, 고귀하고 아름다운거 아는데, 내가 느그 남천서 스장이랑 마 닥치고 죽는건 소박하고 비장하다. 시간이 남으면 국립중앙도서관 어쩌구에 쳐박해서 배우론 쓰고싶다. 배우 필모그라피 모조리 뒤지고 내 뚝빼기 막 깨부숴숴 꾸쑝의 최민식부터 돼지 우물 웅앵에서 불싸파 송강호에 대해서, 그리고 막 염전에서 게이쎾쓰퍽퍽헉헉 하던 황정민에 대해서. 근데 진짜 이휘향 배우님은 어린 내눈에도 너무 야하고 멋졌다. 꾸쑝??? 예, 누님. 


야망의 세월~~~ 부산 너무 좋다. 부산에서 죽기전에... 는 아니고 몸이 좀 싱싱할 때 3년 정도 뜨겁게 몰래 사랑하며 살고싶다. 범죄와 마약의 도시에서 핏물을 머금고 틔운 우리 사랑의 꽃이여. 부산 최고.


근데 대구에 김광석 거리가 있길래, 아니 김광석은 그래도 대학로 아닌가, 대구 뭐 출생지 말고 뭐 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김광석 노래 전부 CD에 청승에센스 쳐발쳐발 한거 아닌가 하고 씨부렸는데, 내가 들고간 MP3 양키놈 조선놈 할거 없이 트랙 전부 청승맞더라. 그리고 니들 머라이어 캐리좀 들어라. 똥음악 듣다가 머라이어 캐리 들으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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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7. 5. 28. 04:20

박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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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인 관계들로 인해 내 안의 말들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질까 싶다가도 다시 곪아온다. 게임을 지웠다. 그리고 또 게임을 지웠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가치있는 무엇으로 빼곡하게 보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숨막힌다. 그것은 어떤 routine을 의미한다. routine을 '굴레'로 써 보려 했는데, 식상하고 부정적이다.


routine에 익숙해지고 그것에 의해 안정감을 찾는다 착각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스트레스의 능률적 처리를 의미한다. 일어나서 턴 테이블 위에 LP를 걸고 커피를 내리는 중산층의 아침같은 판타지를 노래할 바보가 어디있겠나. 나이가 들어가며 그 routine에 경중을 매기고 넘어가도 좋을 것들과 넘어가면 안 될 것들만 구분해도 치매는 이역만리 판타지라 되겠지.


여튼 타자의 혹은 집단의 sub가 되어 이러한 구성성분이 잘 작동하게끔 하는 일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강해져서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되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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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7. 26. 05:46

1999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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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었는지 술에 취해서 터벅터벅 총학생회실로 올라갔다. 아마 109주년 노동절 전야제 준비때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대동제일수도 있고 - 기억이란 뭐. 여튼 술에 취해 갑갑함을 느끼며 총학생회실에 올라가니 부총학생 회장이 있었다. 여성이었다. 헐거운 쇼파에 마주 앉아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저는 몇학번 무슨꽈 누구입니다"로 시작한 나는 이거저거 물어봤었다. 당시 총학 정책이 등록금과 노동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입장이 어떤지, 녹색-환경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물어봤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딱히 기억은 안난다. 원론적인 이야기 - 노동이 풀리면 그런 문제들 역시 중요해지리라는 그런 것들이었고, 새벽시간이라 지쳐있었고, 나는 술에 취해있었다.


부총으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 말을 듣지 못했다. 실은 내가 다닌 학교의 선배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희대 - 이대쪽의 선배들을 거쳐서 총여학생회와 안면이 있었고, 그 부총학생회장이 총여쪽과 모종의 갈등상태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총여학생회가 NL계열(대체 이게 무슨...)과 좀 더 근친적이기도 했었고. 여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총과 노동, 여성,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술에 취해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그게 다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어떤 낙관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생각. 그래서 LGBT문제나 여성 문제가 사회의 주요한 이슈들로 확장되고 그것에 대응하며 나-세계의 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 이 추상적 낙관을 당시에는 명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건데 분명 그것은 낙관이었다.


지금은 그 낙관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나 또한 그 낙관의 연장선을 직접적으로 부여잡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쓸쓸하고 무력하다. 여튼, 나는 그 낙관에 대해서 어느정도 낭만적 회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 제2차 가해나 여성에 대한 무례함을 "운나쁘다"가 아니라, "저것이 옳은 이야기이니 말과 행동을 삼가하자"가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크게 확장되리라는 낙관이 있던 세계.


나는 그 세계의 수혜를 입었었고, 내가 방기하는 동안 그 낙관은 자연스레 퍼지리라 기대했었다. "기대했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정말로 기대했었던 것 같다. 바스라진 그 낙관들을 보며 운동에 있어서 a priori의 문제들이 해소되기를 바란 나의 유치함에 대해 쓴웃음이 나온다.


이 다음, 현재의 여러가지에 대해 한참을 쓰다가 그냥 지워버렸다. 지우면서 나는 절망을, 또 낙관을 생각했다. 이것을 구체적 문장들의 나열을 통해 나누기에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다.



scene 1. 저 봄에, 총여학생회와 세미나를 같이 하며 부총여학생회장에게 "그럼 이건희의 아내도 여성 이슈가 있는가?"를 물었더니, 그녀는 '같은 여성이기에 자본가라도 연대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관계보다 앞선다. 그녀 역시 여성으로서 고통받고 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이다'라는 요지의 대답을 했다. 당시 나는 참신한 개소리라 생각하며 총여실을 나왔다. 젠더 개념이 수입되어 여물지 못한 시절의 촌극이다.


scene 2. 2004년 처음으로 학내의 게이 커뮤니티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것을 지지하던 우리의 대자보는 어용 총학생회에 의해 훼손 및 강제철거 당했다. 총학생회실을 발로 까고 들어가 썅욕해가며 멱살잡이 하던 기억이 난다. 총학생회가 어용이라는 것 - 특정 자본의 배경 아래 (자발적으로) 놓여 있다는 점들이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태도를 지니게 하는것은 아닌가 하고 한탄했었다.


scene 3. 아마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치적이며 직접적인 공격과 숙청 등 여러 정치의 도구들을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시기 또한 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까지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몇몇 지점에서 오류이고 잘못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런 지점들이 페미니즘의 논의가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정상 정치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지점을 비판-비난 하는 것이 상식과 직관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권력, 가해자, 피해자, 생산에 대해 뿌꼬를 읽어대던 모두가 그게 무슨 말이었던가 하며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은 꽤나 한참 후였다.




이래서, 예전 이야기는 말하기도 쓰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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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5. 31. 15:59

오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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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이면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를 생각했는데, 올해는 너무나 끔찍한 범죄들로 인해 광주를 생각하며 보낼 마음의 시간이 없었다. 송강호씨가 최근 광주를 다룬 영화의 택시기사로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광주를 다룬 영화 "광주물"에 대한 단평을 적어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26년>, <꽃잎>, <화려한 휴가>, <박하사탕>, <그해 여름>등이 거론된다. 각 작품들은 워낙 배우 이름도 있고 법정 혹은 여론에서의 인정투쟁도 있었고 하여 여튼 고만고만한 작품들 보다는 이름값이 있었다.


<26년>은 말도 안되는 충무로의 발작이었고,

<꽃잎>은 이정현의 귀기서린 연기만 너무 회자되었다.

<화려한 휴가>는 별 볼일 없는 헐리웃 열화카피 신파극이었고,

<박하사탕>은 광주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고 하기 뭐해 이야기 할 것이 없고,

<그해 여름>도 딱히 뭐.


김현석 감독,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2007)가 늘 광주를 다룬 영화 목록에서 누락되는 것은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은유이며 동시에 실재로서 광주를 다루는 이 놀랍고 능청맞은 이 영화가 마케팅 포인트를 광주에서 코메디로 돌린 것과, 사회적 독해력의 부재로 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최고의 영화로 이야기되지 못하는 점이 씁쓸하다.


광주를 생각하면, 몇년 전 죽은 한 선배가 생각난다. 내가 선배라고 부를 연배의 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지내던 분이다. 남도 출신이었고, 강직하고 정의로우며 따듯했던 성품을 가진 분이었다. 얼굴도 유쾌한 호남형에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장난기가 있었다. 


은선배가 미국 북동부에 갔을 때, 이웃집 노인들이 폭설에 발이 묶여 의료와 생필품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에 삽을 들고 길을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 기억이 난다. 은선배와 같이 <화려한 휴가>를 함께 봤었는데, 영화는 엉망진창 똥덩어리였지만 광주 생각에 영화관을 나서며 눈시울이 붉었던 은선배의 모습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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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5. 26. 01:23

칼과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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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과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이제는 서로 독립적이고 자기통제력이 있는 성인이기에 그 칼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며, 위험요소를 나서서 제거하며 개입하는 것이 옳은 일만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아주 오래전의 나는 누군가의 안전과 행위에 개입하고 싶어했었지만, 그것이 내가 통제를 가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러한 개입의 부당함과 힘의 우월적(억압적) 행사에 대해서 조심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칼과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칼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10km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칼과 그토록 떨어져 있다면 우리 서로가 화장실에 간다거나 집에 늦게 간다거나 하는 일에 대해서 일단은 예민할 필요는 없다. 10km밖의 칼이 우리를 맞출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칼이 저 문을 나서고 100m 전방에 있다면, 우리가 공용장소를 이용하려 움직일 때 10m 근방에 곧장 명치를 향해 날아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경고를 해 줘야하고, 조심하라고 말해줘야 하고, 서로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기 전에 위험에 대해 스스로를-서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2.

인도와 멕시코, 브라질의 몇몇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유층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지역을 만들고 그곳에 담장을 세운다. 그 다음 사설경비원을 고용하여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한다. 


이에 따라 빈자들은 단절된 세계를 직접 보면서 허무함과 증오를 키우게된다. 중산층들은 처음에는 부유층들의 전략에 대해 비난하고 세상을 더 나쁜곳으로 만드는 전략이라 비난하지만, 바로 저 익명의 칼을 막는 가장 효과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란 분리주의에 있음을 알고 유사-분리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분리주의는 사회의 파국으로 향한다. 그것은 가장 혐오스럽게 쌓여진 계급장벽이며, 우리가 좀 더 자유롭게 되기를 포기하는 가장 값비싼 자해행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분리주의적 정책들이 이야기되고 분명하게 시행된다는 것은 상호신뢰를 복구할 수 없으며, 그 신뢰복구의 비용보다 통장잔고를 활용하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의한 것이다.



3.

그래서, 한국에서의 그 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 감정, 전도되어버린 행정력, 국가라는 이름의 무능을 보면 나는 매우 가까이에 있다고 느낀다. 사실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슬픔을 자주 느낀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저 분리주의의 유혹을 강하게 부정할 수 있을까. 혹은 특정 정치집단이 분리주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판매한다면.


칼이 멀리 있다거나, 혹은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끔 강제하는 사회적 구속력이 있다거나, 혹은 칼이 휘둘린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방어막이 튼실하다면 -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이다 - 이러한 사고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우울을 하나하나 끄집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칼이 가깝다고 느낄 때, 우리 사회를 보고 느끼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윤리적/도덕적 언술과 태세하는 것이 희망을 말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4.

우리는 안전하길 바라며 동시에 자유롭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안전을 미끼로 흔들어대면서 자유를 거래하는 저질 상행위가 국가의 이름으로 버젓이 사회에 통용된다.


그 칼과의 거리를 생각한다. 어둡고 깊은 5월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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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5. 24. 02:46

사건에 대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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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돌이 날아와 당신의 머리를 맞췄다(사건 발생). 당신은 고통을 느끼고, 기분이 나쁘고, 이러한 혼란이 수습 된 뒤 돌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궤적을 생각하며 동시에 돌을 던진 혹은 돌이 날아오게 된 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돌을 맞은게 당신이 아니라 문재인 또는 박근혜 또는 심상정이라면?


어떤 여론은 그것을 "정치테러"라고 규정 할 것이고, 어떤 여론은 그것을 "우연한 사고"라며 의미연관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경우의 수를 나눠보자.


A. 비-의도적/자연적 원인 : 공사장 아래를 지나다 안전설비 미비로 인해 돌이 그저 공사장 노동자의 발에 닿아 아래로 떨어진 경우 or 바람이 불어 돌이 건물에서 떨어진 경우.


B. 강력한 의도 : 정치적 반대자에 의한 투석


C. 미약한 의도 :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의한 투석


위의 세 가지 의도들에 의해 사건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사회적 의제와 연관된 사안에서 여론이 행하는 의미지음 행위의 강도는 마찬가지이다. 그저 바람이 불어 돌이 떨어졌다 하면 어떤 여론은 그것을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것에 연결지을 것이고, 강력한 의도로-테러 목적으로 투척했다 하더라도 어떤 여론은 반등을 위한 자작극이라 할 것이고, 아이들이 뛰놀다 돌을 던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은폐 내지는 부모의 사주를 언급 할 것이다. 유력 정치인에게 돌이 떨어지는 순간, 그것은 (원인맥락과 무관한) 사회적 사건이 된다. 오히려, 그러한 해석들이 등장하는 순간 사건이 시작된다.



2.

사회적 의제가 된 순간 고전적 의미의 진실이라는 것은 와해되고, 의미들의 싸움이 발생한다. 사회는 여러 의견들은 싸움을 벌인다. 이것은 세계관이고 삶의 양식이다. 돌을 던진 이의 행위에 대해 진실성을 묻는 것, 그의 의도가 사건의 원인 중 대부분을 구성하며,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맥락에 대한 무지 혹은, 사건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회적 맥락 중 어떤 부분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사건 이후 정치인은 그 불시의 타격을 어떤 식으로건 이용 할 것이다. 테러로 규정짓건(정국냉각), 온화한 미소로 아무일도 아닌척 하건(대인배 인증), 여/야당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건(역풍) 그것은 사회적 의미규정을 타고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의 대응을 우려하는 반대파들은 '이것이 사건의 진실이다'고 주장하며 돌의 궤적과, 투척자의 심리상태등을 열거하면서 사건의 물리적-인과적 원인에 집중해서 과대해석 하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사건은 다음의 두가지 분화를 겪는다. 그 사건은 Token인가 Type인가?의 싸움.


사회적 맥락과 다양한 의견충돌에 대한 넌더리를 내는, 반대파가 이용한다며 사건을 축소시키는 논지들은 그 사건을 우발적인, 개인의, 특수한 사건으로서 - Token으로서 규정하고자 한다. / 사회적 맥락으로서 이 연결들을 파악하고 그 연결들을 보여줌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수정해야 할 지 혹은 이러한 유형(Type)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다.



3.

본론으로, 강남역 살인사건은 Token인가? Type인가? 위의 항들에 각각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성향 혹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기입 해 보면 어떠한 경향성을 보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사건은 사회외 무관하게 발생 할 수 있다.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태어났을 때, 그것은 사회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당신이 목이말라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설탕물일 때, 그것은 사건이지만 사회적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는 사회적 사건이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관계를 애써 부정한다면 대화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다시 한 번, 범죄는 사회적 사건이다. 범죄는 사회 안에서만 규정된다. 우리가 사건들에 집중하고 타자를 통해 발화되는 내용에 귀 기울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라는 영역의 많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자가 조현병을 앓고있고, 삶이 팍팍했다는 것은 사건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것은 그의 내적 살인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화장실에 먼저 들어온 남성 6명을 보내고, 여성을 살해하는, 살인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가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고 여성을 살해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 

강남역 살인 사건의 맥락은 그렇게 Type으로 이해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해지평이라 생각한다. 한 조현병 환자의 개별적이고 충동적인 미친짓으로 규정되는 것(Token)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며 여러 의견들이 충돌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범죄가 가진 사회적 사건으로서, Type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의 발화가, 이번 살인을 사회적 사건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사건인데도 별 언급이 되지 않던 수많은 범죄들을 생각 해 보라)


그가 충분히 정신적 혼돈에 휘둘려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둔다고 해도, 그것이 이 사건이 가지는 사회적 제 맥락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그가 가진 정신질환이 100% 살인의 원인이라 하더라도(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혀), 이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그(살인자) 또는 물리적 원인과 무관하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그의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돌발행위라고 말하는 이들이 은폐하고자 하는 것 - 그 은폐행위가 지시하는 의미들의 연관이 좀 더 투명하게 발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범죄 없는", "안전한", "좋은 세상 함께 만들자"라는 말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기능하지 못한 최면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Token으로 규정함으로서 방지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재미있게도 이 역시 발화자는 모르고 꽥꽥대는 경우가 많다. 힘에의 판단이 결여되었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5.

희생자를 마음 깊이 애도한다. 범죄로 인해 위축된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기지를 희망한다. 삿된 말들과 모욕, 억압의 말단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수많은 친구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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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4. 26. 01:31

게임의 (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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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초기의 고전적인 게임 양식들은 말을 옮기거나(장기와 체스) 확률을 가지고 놀거나(동전던지기, 가위바위보) 했었다. 컴퓨터의 개발로 인해 세계를 극단적으로 추상화한 고전적 게임에서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게임으로 지난 30년간 빠르게 발전했다. 그래픽은 2컬러에서 32비트 트루 컬러로 변경되었고 3D입체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보다 직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게임에의 몰입을 흐리지 않기 위해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라는 종이 생명의 나선에서 멸종으로 추락지지 않고 영생으로 도약한다면, 게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자 단위를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한다면(그것이 영생이 의미하는 바이다) 각 개인은 플레이어(물론 이 때의 개인, 플레이어라는 단어는 현대어의 개인, 플레이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와 다를 것이다)에게 시뮬레이팅 된 하나의 세계가 주어질 것이다. 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키우던가, 우주 단위의 전쟁을 하던가 여튼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플레이어의 여러 요구들은 직접적으로 그 세계의 상과 연결 될 것이다. 플레이어간의 세계교차를 통해 전쟁이나 육성, 전략등을 겨룰 수 있는 온라인 구조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 안에 세계를 지금보다 현저히 드높은 정보량으로 담게 되지 않을까? 세계를 세계와 같게 묘사함으로서 게임 안에 세계를 구축하기 - 현재의 게임 발달에는 이러한 방향성이 있다.


이것은 재미있게도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 여러 별과 은하와 거대구조와 우주 그 자체를 다루는 것과 형태상 동일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정보량인데, 우주가 초끈들을 통해 정보량을 구성한다면, 게임은 그것을 가동할 데이타 박스의 물리적 크기에 의해 그 정보량이 한계지어진다. 게임은 영원히 실재세계를 그대로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차라리 게임안의 세계는 실재세계를 모사한 다른 세계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물론 그 독립의 에너지원이 서버에 공급되는 에너지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개인는 게임 안에서 세계를 구축하고, 또 그 구축된 게임 세계속에서 다시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마인크래프트 상에서 블록들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고 그 컴퓨터에 마인크래프트 프로그램을 코딩해서 마인크래프트를 돌리려는 시도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현생인류의 우리 눈에 큐브형태로 보이는 마인크래프트의 캐릭터가 아닌, 압도적인 정보량과 묘사들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가능하리라 생각 해 본다면 그 캐릭터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넌 스스로 무엇이라 생각하니?" 글쎄, 난 그 캐릭터가 "인간이요"라고 대답하지 "저는 프로그래밍된 존재로서 어쩌구 저쩌구 입니다"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가 장기에서 졸을 옮기고 차와 포를 옮기듯이 이러한 시뮬레이팅은 본질적으로 神과 같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 안에서 신이 된다. 그리고 나-개인과 같은 플레이어 하나를 두고 그 세계 안에 살게 하다가 그를 예수로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친한 친구 몇 명이서 올림포스 동산을 만들 수도 있다. 매우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게임 안의 객체들이 제각기 자아를 가진 형태로. 그것은 어떤 점에서 하나의 우주를 만든 것과 동일하다. 


물론 이러한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수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일단 원자단위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기계적 기술들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정보들을 처리할 압도적인 능력의 논리회로를 구축 할 수 있어야 하고, 감각과 능동성 등 아직 기계어로 변환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해석과 복제가 나와야 한다. 이러한 문제 외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들 역시 남아있다. 타인의 정보를 복제하여 게임에 넣고 학대를 한다던가, 유전 정보에 기반한 복제 캐릭터를 (그것이 옆집 영철이거나 뒷집 순이엄마일 수 있다) 시각 뿐만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 등의 요소까지 침투 가능한 VR에 연결해 성적 침해를 한다면?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나, 집단학살등은?


그렇다. 사실 이런 문제들 역시 현대의 게임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이고 우리는 아직도 그것에 대해 논의중이다. 아마도 위에서 열거한 기술이 개발 되었을 때, 그때의 개인이라는 그 무엇은 저러한 요소들에 대한 통제장치등을 마련하고 해결하려 할 것이다. 다만 원자를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이 함축하는 것은 원자보다 더 적은 단위에서의 정체성/차이 규정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복제 가능성은 동일하게 (지금과 마찬가지로) 해킹의 위협에 직면해 있게 된다. 결국 암호화와 identity가 중요한 기술적 열쇠로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남게 된다.


사실은 어떤면에서 게임은 곧 모든 것이 될 지도 모른다. 90년대 PDA와 핸드폰의 경쟁을 겪은 사람이라면 지금의 스마트폰을 PDA라고도 핸드폰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이유를 알 것이다. 본질이란 재 규정되는 것이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니니까.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임과 업무, 게임과 디자인, 게임과 또 그 무엇들을 나누는 것은 기술이 극한으로 수렴할 때 무의미 해 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 극한을 초끈 단위를 인공적으로 다루는 것이라 할 때 일단은 원자 정도에서 이정도의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그때에도 온/오프의 구분은 존재 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주 먼 은하에 간다는 것과 그리하여 식민지를 만든다는 것이 시간의 벽으로 인해 엄청난 이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항성간, 은하간 여행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이익보다는 생존의 이유일 것이다. 저 먼 미래에는 주체-개인의 단위가 이미 온라인으로 흡수된 형태가 올 지도 모른다. 오히려 오프라인은 우리가 도구들을 통해 수집하는 에너지원으로서 기능하고 사건은 정보들간에 발생 할 것이다. Admin 또는 GM으로서 각 서버별로 기능하는 것을 우리는 개인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말이다. 여튼, 그럼에도 게임 외부의 우주는 존재할 것이고 게임 서버가 작동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그렇게 우리는 오프라인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몇가지 광물과 에너지를 위해 평화롭게 살고 있는 행성의 생명체를 서버기지를 안착시키는 우리 현생인류를 걱정하며 끔찍해 할 필요는 없다. 생명이란 정보의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탄소유기화합물일 뿐이다. 항성간 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비루한 탄소유기화합물의 껍질과 다른 껍질을 지닐테고, 그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항성과 생명없는 수많은 별에서의 자원 획득이지 감자캐던 김씨의 텃밭을 헤집는게 아니다.


게임은 쉽게 만들어질 것이다. 주체의 상상에 의해 금방 세계가 구성될 것이고, 그 구성된 세계가 불완전하다면 그것은 매트릭스처럼 붕괴하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거나, 혹은 안정된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무수한 실험-세계의 파괴와 창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이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했던 그 무엇이라고 여기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만 정보량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우주보다 부족할 뿐.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을 하고 싶은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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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6. 4. 20. 03:34

침묵의 관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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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한 국가, 사회, 조직의 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좋다/나쁘다로 단순화 할 수는 없지만, 외부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조직은-동어반복적으로-문제가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내부에서 구성원이 동의하는 합리적 과정을 통해 해결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은 조직이 괜찮다 볼 수 있다. 문제의 해결을 관장하는 사람 혹은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뜻일 테니. 반대로, 억압적으로 문제를 찍어눌러 없던 것처럼 꾸미려는 경우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문제가 많아도 문제고, 문제가 없어도 문제인 것.



02.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은 결코 능사가 아니지만, 외부-사법체계-를 호출하는 것은 사건의 규모와 심각성에 직접적 연관을 가짐에도,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하며, 보다 중요하게는 조직과 개인으로부터 문제를 스스로 규정하고 해결할 힘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공통의 문제에 대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직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제해결을 위해 조직이 기능하지 못할 때, 그때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외부를 호출해야 할 때가 아니라, (온건하게 말하자면) 조직을 해체하여 재 조립을 해야 할 때이다.



03.

많은 경우 나와 너,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드러난 것들에 대해 반응한다. 드러나지 않은 것에 어찌 반응하라는 말인가? 그러나 항상 침묵의 관전자들, 움직임과 흐름과 반응을 지켜보고 있으며, 어쩌면 그 움직임과 흐름과 반응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침묵의 관전자들에 대한 고려를 해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이 침묵의 관전자들에 대한 이해가 없이 움직이는 친구들 혹은 한때 친구라 생각했던 이들을 보면 왜 저럴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혔다 할 지라도 절때 빼서는 안되는 타이밍이라는게 있는데.



04.

앨범을 준비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다뤄야 하는 돈의 액수는 증가했고, 지불해야 하는 계약관계도 늘었고 그에 따라 이행해야 하는 의무도 가중되었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너무나도 불분명했고 판단할 수 있는 전례가 없었다. 그 스트레스를 주변에 계속 전가하고 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았나, 하여 반성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언가 빠트린 일은 없나 하고 각종 메일과 문서들을 뒤지고 싶다. 두어달 그렇게 살다보니 일에 대한 어떤 강박과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는게 쉽지 않다. 엊그제 여덟시간 잔 게 너무나 좋았다. 



05.

침묵의 관전자가 항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어떤 윤리적 명령이거나 혹은 자기검열이 아니다. 침묵의 관전자는 사태 그 자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들에 대해 예민해지고 말을 삼가하고 행동을 조심하게 가져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커다란 이득이다. 결국 침묵의 관전자들이 사건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매일 매일의 고통에 꽥꽥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06.

눈을 감고 천천히 어떤 흐름으로 접근하게 될 지를 상상하고, 그 흐름의 결절점마다 포인트를 하나씩 만들어두면 좋다. 물고기를 낚는 일이나, 사람을 낚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돈이 없다면 없는대로 헤쳐나갈 수 있는 구석이 있다. (또, 그런 구석이 아직은 그래도 있으리라 믿어본다.)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닥치는대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주 작은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 내 시간과 주의를 잠시 돌려야 하는데, 그게 좀체 쉽지 않다. 방법을 모색중이다.



07.

단순하게도 영화를, 음악을, 문학을 보고 듣고 읽는 사람의 마음속이 얼추 대부분 비슷하다. 단지 스스로가 포인트를 두는 지점이 다를 뿐. 시스템이 나쁘지않게 작동중이라면, 굉장히 특출나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더 좋은 것을 더 좋은 것이라 밝혀주는 것이 시스템의 몫이니까. 침묵의 관전자들이 그런 것은 아닐까. 



08.

아직도 무엇이 최선일까, 하는 외려 비인간적인 고민을 한다. 그건 개인이나 집단의 능력 밖의 판단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다 지난 일이다"라며 뇌까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조심하고 삼가하는 것은 오래된 미봉책이다. 이 처세술을 삶의 윤리로 격상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09.

"I quit"을 선언하거나 혹은 "Fuck off"라고 외치는 선택지만 남은 상황이 극단주의 아닐까. 공존에 대한 포기, 타자에 대한 환멸, 견딜 수 없는 웅성거림. 한국 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승자독식 선거제를 닮은 무수한 그림들.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 저 양 극단 사이에 사람이 앉을 자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대화 없이, 자신의 뇌에서 정합적으로 발생한 연쇄에의 철썩같은 믿음들. 세계와 화해가 불가능한 시절.



10.

사랑은 대부분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승리하고 웃으며 그대를 안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변했다는 의미이다. 경철수고의 이 오래된 레토릭을 반복하는 것은, 그것이 그토록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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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12. 16:11

실화 극장 : 티셔츠 찍던 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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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십여 년 전이다. 내가 활동가로 살다 쫒겨난 지 얼마 안 돼서 인디씬에 들어가 살 때다. 신촌 왔다 가는 길에 상수역으로 가기 위해 홍대 정문에서 일단 273 버스(Bus)를 내려야 했다홍대 정문 안쪽 길 가에 서서 티셔츠를 찍어 파는 문바가 있었다. 티셔츠를 한 벌 사가지고 가려고 한 장 거하게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티셔츠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문바였다. 더 깎지도 못하고 찍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문바는 잠자코 열심히 실크스크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만지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실크스크린 판형만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안 찍고 실크스크린 틀만 매만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단색으로 찍어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공연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공연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실크스크린 인쇄를 아니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아 그냥 민무늬 티셔츠라도 달라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찍고 마를 만큼 볕을 쬐야 티셔츠가 되지, 쌩 잉크가 재촉한다고 티셔츠가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찍어댄단 말이오? 문바, 외고집이시구려. 차 시간이 없다니까‥‥‥.”

문바는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공연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찍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찍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찍어야 할 티셔츠를 숫제 테이블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블라스트 비트를 두드려대며 흥얼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비로소 문바는 힘을 주어 실크스크린을 대고 잉크를 조심스레 부은 후 손가락 두께만한 나무판으로 단호하고 거칠게 박박 비벼대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티셔츠가 걸레짝이 될 것만 같았다. , 얼마 후에 티셔츠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티셔츠를 마구 뭉개 쓰레기통에 넣는다. 새로이 티셔츠를 꺼낸 문바가 다시 테이블 위에 셔츠를 두고 폴스 록을 흥얼거린다. 한참이고 멍하니 구경하던 날 보더니 문바가 하는 말이, 안준단다. 줄 생각이 없단다. ?


공연을 놓치고 다음 클럽을 가야 하기는 커녕 막차 시간마저 빠듯해진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실크스크린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문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문바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홍문관의 육중한 아래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문바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시커먼 눈매와 흰 콥스페인팅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문바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켜보니, 문바가 열렸는데 닫혀서 엑소가 옥세라고 야단이다. 여튼 힙해서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티셔츠 한 장 안찍는 문바의 모습을 보니 별로 특별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20억 아시아 엑소팬들의 설명을 들어 보면, 멤버 전신이 티셔츠에 나오면 흔하고 권위가 없어 입기에 부담스럽고, 한명만 실려 있으면 너무 빠순이 같아 민망하고, 얼굴만 나오면 멋진 몸을 볼 수 없어 아쉽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문바의 힙함에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문바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티셔츠(T-shirt), 빨고 오래 입어도 프린팅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티셔츠는 실크스크린 인쇄를 하지 아니하여 무늬가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티셔츠를 뽑을 때, 질 좋은 잉크를 실크스크린에 잘 매겨 흠뻑 칠한 뒤에 겨울바람, 봄볕 다 쐬어가며 마른 뒤에야 시장에 내놓은다. 이것을 힙질 한다.”고 한다.


실크스크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실크스크린을 짜면 1도는 얼마, 그보다 화려한 것은 얼마의 값으로 구별했고, 4도 인쇄(CYMK)한 것은 3배 이상 비쌌다. 4도 인쇄란, 어도비 마스터 콜렉션의 어매리칸 스탠다드 컬러에 맞춰 싸이언, 옐로우, 마젠타 블랙으로 색을 구별하여 총천연색을 구현하는 실크스크린 인쇄의 극치이다. 셔츠 장인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생산공정에 대한 이해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4도 인쇄를 위해 잉크를 나눌리도 없고, 또 말만 믿고 3배나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힙스터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힙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예(工藝)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옥세 티셔츠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문바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문바가 나 같은 힙스터 워너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힙한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문바를 찾아가 치킨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홍대 가는 길로 문바를 찾았다. 그러나 문바가 서있던 자리에 문바는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문바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홍문관의 아랫도리를 바라다보았다. 육중하게 홍익대학교 정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홍문관 아래로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 그 때 그 문바가 저 막혀있는 하늘을 보고 있었구나. 강릉에서 태어나 온갖 예술병 환자들을 뚫고 대한민국 최고라는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들어가 티셔츠의 큰 뜻을 펼치고 싶었으나, 나 같은 이들에게 멸시나 받았구나. 열심히 티셔츠를 찍다가 유연히 홍문관 아래의 어둠을 바라보던 문바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아아, 문바여.


오늘, 홍대 룰루랄라에 들어갔더니 자이언트 베어가 술병을 뜯고 있었다. 전에 자이언트 베어를 아가리로 쿵쿵 패버렸던 생각이 났다. 그때, 자이언트 베어가 입고 있던 그 티셔츠가 바로 그 문바의 티셔츠이다. 요사이는 티셔츠 장인들의 실크스크린 슥삭질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십여 년 전, 티셔츠 찍던 문바의 모습이 떠오른다.


옥세(OXE)티셔츠 구입 문의 http://suregisp.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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