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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8. 10. 5. 00:45

어떤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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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텍스트에서 (이는 마치 세계를 구원하는 - 지나가던 선비 혹은 스님과 비슷한데) 하루끼와 류를 가지고 싸우던 일화가 많이 나왔다. 혹은 내가 그런 텍스트를 많이 봤던가. 여튼 요점은 하루끼가 찌질하고 류가 나았다 하는건데, 둘 다 무라카미 어쩌구이니 그놈이 그놈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루끼의 초기작, 그러니까 100%의 여자아이를 만난다거나 18세기 터키의 조세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류의 중후기작, 여자의 발목을 잘라 그 위에 고통을 제거해주는 스프레이를 뿌린다음 섹스를 즐기는 클럽이나 뭐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대체 하루끼와 류를 비교하는 일화가 왜 그토록, 지나가던 선비 혹은 스님처럼 현대의 어떤 텍스트들 사이에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다. 사실 "무라카미"라는 것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무라카미" 이 얼마나 강렬한가? 대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성씨가 아닌 이름의 강렬함을 이에 대조해보라. 만약 믿지 못하겠거든, 생각해보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강렬한 이름이 아니라면, 그 상의 권위가 이어졌겠는가?)


불행이도 (우리 모두의 실존이 마찬가지이듯) 이러한 대조와 슬픔이야말로 마치 불교의 인생=고통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기능한다. 항상 비웃던 하루끼가 어느날 돌부리에 걸리듯 떠오르고, 그나마 건전하다고 믿던 류도 별볼일 없던 욕정의 노예(machi like Dmitri)이듯 고귀함과 저속함은 우리, 유기체 안에서 무모순적으로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미사에서 젊은 신부는 "예수가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처럼 옆의 이들을 대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레닌과 세 동료처럼, 맑스를 만난 엥겔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는 회고적 관점이다.) 신화가 아닌 삶의 태도로서 베드로를 만난 예수, 이 관점에 있어서 나는 하루끼보다는 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그는 독자를 베드로처럼 만났다. 그에 반해 하루끼는 문학의 제단위에 욥 혹은 이사야가 되지 못했다. (활활 불타라~~~)


무라카미 류, 그것은 결여였고, 그것은 구제받지 못할 남성성이었고, 사세보 항구였으며, 동두천 혹은 용산이었고, 남아있는 영등포 같은 것이었다. 류는 그래도 도쿄가 아닌 서울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어떤 지성들(혹은 우리가 좋다고 신나하던 그 사람들)은 그래서 反-도쿄로서의 서울이었지, 서울로서의 서울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차이를 누군가 이해한다면, 음...


글은 지우면 되지만, 그리움은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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