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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앵~~~

카테고리 없음 2017. 10. 7. 04:07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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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새벽 2시 30분. 모기 한마리가 날아든다. 모기가 내는 소리에 나는 헛박수나 헛뺨을 때린다. 신경을 긁어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잠옷 한 겹 벗고 방의 불을 켠다. 덤벼봐라, 손가락 사이로 시커멓게 짓이길테다. 보이지 않는다.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피곤함이 밀려오지만 잠을 잘 수 없다. 모기다.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다. 아마 나에게는 그냥 잠을 잔 후 피 몇방울 헌납과 십자빵을 동반한 긁기를 수행하는 편이 훨씬 이익일 것이다. 그게 싫다. 모기이기 때문이다.


난 모기를 잡기 위해 불을 켰지만 내 생각에 잡혀먹히려 한다. 왜 사는게 수십년 째 이모양인가. 울컥대는 몸의 욕망들을 하릴없이 해소시켜야 하고, 테트리스처럼 쏟아지는 과제들과 요구들을 수행하며 내 일신을 편히 뉘이게 할 돈을 번다. 이 모기새끼들. 도저히 이기려 해도 이길 수가 없다. 매년 4월 부터 10월 까지, 일년의 절반이 모기다. 추위를 더위보다 훨씬 선호하는데 한국의 더위와 함께 동반되는 우울한 습도와 별개로, 겨울에 모기가 없다는 것도 이 선호에 일조한다. 모기가 없는 겨울.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너무 멋지다. 빨리 겨울이.


모기 때문에 잠을 못잔다. 모기 때문에 담배를 물었다. 저 조그마한 아미노산 프로그래밍이 수행하는 놀랍도록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공격에 나라는 유기체는 너무 미약하다. 맹장수술 이후 상처가 잘 낫지 않는데, 그것이 나를 더 모기에 취약하게 만든다. 인공지능 어쩌구가 나오면 난 모기잡는 집사를 살 것이다. 빨래, 청소, 요리, 화분에 물 주기, 고양이 밥 주기 등등은 나에게 적절한 만족감과 노동의 요구들을 일깨우지만, 모기잡기는 그 쾌가 고단함보다 크지 않다. 모기를 때려잡지 않는 과학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다.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아, 모기가 사라졌을 경우 위험에 대해 아직 예측하지 못한다구요. 네, 그 입장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모기란 말입니다. 심하다구요.


해소되어야 할 욕망이지만 부질없다. 밥 먹고 싶지만 때 지나면 똥 싸고 싶고, 신나게 놀다가도 내 땀과 체취로 가득한 이불로 쳐 들어가고 싶듯, 모기는 그런 나의 굴레안에 영원할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유기체로서 기능을 정지해도 몇 분간은 모기가 노릴것만 같다는 생각에 모기가 커 보인다. 이건 신神과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음으로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전능함, 내 밤은 모기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울컥하며 올라오던 몸의 욕망도, 가까스로 잠들어야 한다고 외치던 뇌의 셧다운에 대한 요구도 모기의 괴롭힘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내 시야안에 띄일것이라 생각했지만 잠잠하다. 적에 대한 철저한 무력감은 사랑과 닮아가는 것인가. 정말 모기가 싫다. 싫다. 너무 싫다. 연속해서 네 마리를 잡았던 지난 밤이 달콤하게 떠오른다. 난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모기가 있는 한 쉽게 잠들 수 없다. 나는 분명 모기에게 피를 빨리겠고,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도 몸도 편하겠지만, 내 의식과 모기는 양립불가능하다. 하나가 철저히 침묵해야 한다. 그게 날 돌아버리게 만든다. 욕망보다 지독하고, 일보다 버겁다. 그것도 매년, 일년의 절반을!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 인간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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